보물 제1925호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구’ 중 유리제 사리병이 조선 건국 당시 최고급 유리인 ‘석영 유리’로 제작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국립중앙박물관은 6일부터 21일까지 금강산 출토 보물 제1925호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구’ 중 유리제 사리병을 보존처리했다고 26일 밝혔다.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구’는 이성계와 두 번째 부인 강씨(姜氏) 등이 조선 건국 직전인 1390년과 1391년에 발원했다. 1932년 강원도 금강산 월출봉 석함(石函) 속에서 발견됐다. 이 석함에서 사리의 외기(外器)인 백자대발 4개, 은제도금라마탑형사리기, 이 사리기를 안치한 은제도금팔각당형사리기, 청동발 등이 발견됐다.
이 중 유리제 사리병은 가장 안쪽에 모신 은제금도금라마탑형사리기에 안치됐던 사리병이다. 크기는 높이 9.3㎝, 지름1.2㎝이며 무게는 31g 정도다.
이 사리병은 은제금도금판에 원통형 유리를 끼우고 위에 은제금도금 마개로 막혀있다. 안에는 은제도금 사리받침대가 들어있다.
박물관은 이번 보존처리를 통해 유리제 사리병의 일부 파손된 부분을 접합하고. 결손난 부분을 복원해 원형을 회복했다.
보존처리 과정에서 분석한 사리병의 주성분은 이산화규소(SiO2)가 98%가 넘고 비중은 2.57로 석영유리에 가깝게 나타났다.
일반 유리는 주원료로 규소가 사용되고 녹는 온도를 낮추기 위한 용융제로 나트륨, 칼륨, 납이, 안정제로는 산화칼슘이 사용되기 때문에 1000℃ 미만에서 제작된다.
반면 순수 석영유리는 열에 아주 강하여 1500℃ 이상 가열하지 않으면 녹일 수 없고 강도가 일반 유리의 2배 정도여서 일반 유리의 제작과정에 비해 큰 노력과 기술이 필요하다. 박물관은 “유리제 사리병을 순도가 높은 석영유리로 제작하고 내부에 은제금도금 사리받침대를 세웠으며 이를 다시 은제도금라마형사리기와 은제도금팔각당형사리기에 이중으로 봉안했다는 점은 은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구가 당시 최고급 재료와 기술로 제작됐음을 알 수 있다”며 “석영유리로 제작된 완형의 사리병으로 14세기 우리나라 유리 제작기술을 보여주는 국내 첫 사례”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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