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대작 ‘왕좌의 게임’이 한국서 나오기 힘든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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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판타지 드라마 인기 꾸준해도 대규모 제작비 부담에 선뜻 못나서
콘텐츠 사용료 둘러싼 갈등도 한몫
CJ ENM “전년대비 25% 올려야”
IPTV 사업자들 “무리한 요구”

구한말을 배경으로 독립운동, 신분 차별 등을 그려 큰 인기를 모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tvN 제공
구한말을 배경으로 독립운동, 신분 차별 등을 그려 큰 인기를 모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tvN 제공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은 2011년 방영을 시작해 2019년까지 8개 시즌을 거치며 17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방영됐다. 중세 배경의 판타지 장르인 이 드라마는 의상, 미술, 특수효과 등에 편당 1500만 달러(약 168억 원·시즌8 기준)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올해도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 넷플릭스에선 ‘더 크라운’처럼 대규모 제작비가 들어간 시대극이 시청 상위 콘텐츠를 휩쓸고 있다.

한국에서도 판타지 드라마인 ‘도깨비’(2016년), 시대극인 ‘미스터 션샤인’(2018년)이 큰 인기를 끌었다. 수요는 있지만 이런 대작 드라마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제작비 때문이다. 과거에는 지상파들이 드라마 제작 인력과 예산을 갖춰 투자를 했지만 광고수입 감소 등으로 드라마 제작을 줄이면서 이제는 전문 제작사들이 주도권을 쥐게 됐다.

하지만 전문 제작사가 대규모 자본을 유치하는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총 400억 원이 투입돼 화제를 모은 미스터 션샤인이 tvN과 넷플릭스에서 동시 공개한 것도 제작비 때문이었다. 넷플릭스는 미스터 션샤인 제작비의 70%에 해당하는 280억 원을 투자하고 독점 배급 판권을 구매해 한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미스터 션샤인을 방송했다. 물론 넷플릭스 등 OTT의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작품은 제한적이다.

광고나 투자 유치를 통해 대규모 제작비를 확보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콘텐츠 공급사와 유통사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올해 CJ ENM은 제작비 마련을 위해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국내 인터넷TV(IPTV) 업체로부터 받는 콘텐츠 공급 가격을 전년보다 25% 올리겠다고 밝혔다. 인상안이 반영되지 않으면 IPTV에 방송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이에 IPTV 업체는 10일 반대 성명을 내고 전년 대비 25%를 인상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주장했다. 한 IPTV 업체 관계자는 “인상을 해야 하는 구체적인 이유를 제시하지 않고 갑자기 25%나 올려달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CJ ENM은 그동안 콘텐츠 사용료가 제대로 책정되지 않았기에 이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CJ ENM 관계자는 “주 52시간제 도입 및 장소 대여비와 인건비 상승 등으로 해마다 콘텐츠 제작비는 30%가량 올라가고 있다”며 “한국은 외국과 비교해 콘텐츠 사용 가격이 낮아 양질의 콘텐츠 제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2019년 국내 방송 사업자들은 약 2조6000억 원을 콘텐츠에 투자했고 이 중 IPTV 등 플랫폼 업체들이 지급한 사용료는 8279억 원으로 전체의 33%를 차지했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 카간 등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유료방송 수신료 매출의 75%는 콘텐츠 제작 업체가 가져가고 플랫폼 업체는 25%를 받는다. 국내 IPTV는 2019년 기준 수신료 매출 중 32.8%를 콘텐츠 제작 업체에 지급했다.

IPTV 업체 측은 “지난해 매출 증가율이 8∼9% 정도여서 콘텐츠 사용료를 급격히 올리기가 어려운 데다 CJ ENM에 지급하는 액수를 늘리면 중소 콘텐츠 제작사에 지급할 여력이 줄어든다”고 밝혔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판타지 대작#콘텐츠 사용료#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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