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친구의 결혼식에서 한 동기의 안타까운 죽음을 전해 들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 아마 우울증이 심해져서 극단적 선택을 했으리라는 이야기였다. 그리 친하지는 않았지만 어린 시절 운동장에서 웃으며 뛰어놀던 친구의 얼굴이 떠오르며 기분이 착잡해졌다.
모든 우울증 환자가 스스로 삶을 내려놓지는 않지만 일부는 자기 의지로 삶에 마침표를 찍으려고 한다. 저자는 살면서 여러 번 삶을 마감하려고 했다. 우울증 경력 20년, 은둔형 외톨이 경력 7년, 자살 시도 경력 10년…. 이 책은 저자가 오랫동안 우울증과 싸우면서 써내려간 기록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언제 스스로 삶을 포기할지 자신도 모르기 때문이다.
희망은 있다. 우울증 치료제와 상담 치료 등 현대 의학은 우울증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유효한 도구와 우울증에 관한 지식을 발전시켜 왔다. 병원에 가지 않더라도 일반인도 쉽게 우울증에 관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책도 여러 권 나와 있다.
이 책 역시 우울증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쓰였다. 다른 책들이 지식을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이 책은 공감에 더 큰 비중을 둔다.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아온 저자의 기록은 진솔하다. 자살 시도, 자해, 가족에 얽힌 에피소드 등을 가감 없이 실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저자는 약물의 도움 없이 우울증을 정면으로 돌파했다. 그렇다고 이 책이 현대 의학을 불신하는 건 아니다. 본인은 여러 상황 때문에 병원에 가지 않았지만 가능하면 병원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고 말한다. 병원에 가고 싶어 하지 않는 환자일수록 가족이 대신 병원 치료를 권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책의 많은 부분을 약물과 의료진의 개입 없이 홀로 우울증과 대면하며 효과를 본 방법에 할애했다. 몇 가지만 소개하면 마트에서 물건 세 가지 사오기, 도서관 산책하기, 생각 없이 무료 영화 돌려 보기,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체험 프로그램 수강하기 등이다. 우리 사회는 우울증에 관해 잘 이야기하지 않는 분위기인데, 저자는 우울증에 관해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는 게 우울증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덧붙여 우울증 환자가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가족이나 친구가 할 수 있는 실천에 관해서도 조언했다. 개입하되 적당한 선을 지키며 자신의 마음 건강도 챙길 것. 주변 사람이 해야 할 바다. 무엇보다 환자 스스로 살고 싶은 마음을 먹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는 “가족에 대한 살인”이다. 죽은 사람의 고통이 유가족과 남은 지인들에게 전가될 뿐 고통은 사라지지 않기에 우리는 살아야 한다. 죽는 순간까지 삶을 누릴 것, 인간 된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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