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현상유지(status quo) 국가인가, 아니면 수정주의(revisionist) 국가인가.’
2000년대 들어 국제정치학계의 최대 화두다. 현재의 국제 체제를 받아들이면 전자이고, 그렇지 않으면 후자다. 급격히 힘을 불린 신흥 강대국은 수정주의로 치달아 주변국과 갈등을 일으키기 쉽다는 게 일반적 견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나치나 일본 제국주의가 대표적이다. 이 책은 이런 시각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존 미어셰이머 등 미국 학자들이 중국의 공격성을 부각하는 것과 배치된다.
저자에 따르면 중국은 1949∼2008년 주변국과 23건의 영토 분쟁을 벌였는데 이 중 17건이 중국의 양보나 타협에 의해 해결됐다. 대만 인도 부탄 일본 베트남 등 나머지 6건의 미해결 영토 분쟁은 본토 수복(대만)을 제외하고 대부분 해양 진출과 관련돼 있다.
그렇다면 중국이 이 기간 영토 분쟁에서 양보한 이유는 무얼까. 저자는 1949년 건국된 신생국의 취약성이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마오쩌둥의 극좌운동으로 경제가 파탄 지경에 이른 상황에서 소수민족들의 저항에 부닥친 중국 정부가 외부 위협을 낮추기 위해 인접국과의 갈등을 피했다는 얘기다. 예컨대 1959년 티베트 봉기에 이어 1962년 대약진운동 실패로 어려움에 처한 중국은 북한 몽골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소련과의 영토 분쟁에서 한발씩 물러섰다.
그러나 중국이 일방적으로 양보만 한 건 아니다. 횟수는 적지만 중국은 양자관계에서 자국의 협상력이 현격히 줄었다고 판단되면 무력을 동원했다. 예컨대 중국은 1962년 10월 인도와의 국경협상이 결렬된 후 군사 공격을 감행했다. 인도의 병력 증강이 가시화된 데다 경제위기로 중국의 입지가 약화됐다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서였다.
이런 맥락에서 대만과의 영토 분쟁을 매개로 향후 미중관계의 불안요인이 커질 수 있다는 저자의 견해는 주목할 만하다. 미국의 대만 지원이 자국의 협상력을 현격히 약화시켰다고 중국이 인식하면 무력을 동원할 수도 있다는 것. 게다가 중국의 군사력이 갈수록 강해지는 현실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중국이 주변국과의 영토 분쟁을 평화적으로만 해결할 것이라고 낙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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