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크리스마스이브. 중년 남성 윤호연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전화를 건 이는 자신을 윤호연의 부인인 선우정의 전 남자친구라고 소개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죽으면 윤호연도 죽을 것이라는 협박을 덧붙이면서 지금 당장 만나자고 한다. 호기심을 느낀 윤호연은 전화를 건 이를 만나러 약속 장소로 향한다.
1999년 12월의 어느 날. 청년 도윤호는 잠에서 깬다. 꿈에서 누군가와 술을 마신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술을 마신 대상이 중년이라는 것 외엔 확실하지가 않다. 도윤호는 전 여자친구인 선우정을 떠올린다.
언뜻 보면 이 소설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것 같다. 2019년에 윤호연과 도윤호는 술을 마셨는데, 20년 전인 1999년에 도윤호는 꿈에서 윤호연과 함께 술을 마셨다고 생각하기 때문.
공상과학(SF)소설에서 주로 쓰이는 과거나 미래로 시간여행을 하는 ‘타임 리프’ 장치도 없는데 두 사람은 어떻게 연결된 것일까. 허무맹랑하게 이어지는 소설은 서서히 도윤호와 윤호연의 교집합을 드러낸다. 과거와 현재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소설의 주제 의식을 작가는 조금씩 꺼내든다.
이 작품은 형식에 방점을 뒀다. 서사 중심인 소설보다는 읽기 어렵지만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작가가 숨겨둔 생각을 음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작가는 무한을 나타내는 기호인 ‘∞’를 이 작품의 모티프로 삼고 있다. 영국의 수학자이자 성직자인 존 월리스(1616∼1703)가 처음 사용한 무한의 의미를 시간 개념으로 확장한 것. 시작과 끝이 없이 돌고 도는 무한의 모양처럼 과거와 미래가 연결될 수 있다고 상상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하자. 두 개의 원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이야기를. 너와 나와 그의 이야기를. 너와 너의 이야기를. 1999년 서울에서 2019년 서울까지. 무한한 빛을 발하는 밤하늘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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