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를 바탕으로 한 짐 셰리던 감독의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1993년)에서 주인공 제리 콘론은 아일랜드공화국군(IRA) 소속 폭탄 테러범이란 누명을 쓰고 아버지마저 공범으로 체포된다. 영국의 압제와 북아일랜드 독립 투쟁의 틈바구니에서 제리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아버지는 감옥에서 죽음을 맞는다.
조선시대 영조와 사도세자의 참극에 휘말린 한 부자의 운명도 비극적이었다. 아버지가 억울하게 세상을 뜬 뒤 아들은 550구에 이르는 장편 고시를 남겼다. 그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시를 쓴 이명오(李明五·1750∼1836)는 영조 시대 유명 시인인 이봉환(李鳳煥)의 아들이다. 이명오의 아들 이만용(李晩用)까지 3대가 시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봉환은 세손(후일의 정조)에게 사도세자 묘소 참배를 촉구하는 상소문의 초안을 썼다는 죄로 영조의 노여움을 사 고문을 받은 끝에 세상을 떴다. 이 일에 연좌돼 다섯 아들도 고초를 겪었고 시인 역시 전남 강진으로 귀양 갔다. 세상은 전과 다름없이 꽃 피고 새 지저귀지만 이명오는 아버지 생각에 비통할 따름이다. 이때의 슬픔을 시인은 “배 속에서 수레바퀴가 도는 듯하다”(‘腹裏車輪動’)고 썼다.
영화는 경찰이 사건을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제리가 풀려나는 것으로 끝난다. 법원 앞에서 제리는 자신의 결백과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고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투쟁할 것을 다짐한다. 이명오 역시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평생 동분서주했다. 임금에게 호소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임금의 앞길을 막기도 했고, 권력자의 도움을 얻으려고 유력 가문 인사들과 교제하는 데 공을 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필생의 노력에도 아버지의 신원(伸원)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이현일·‘이봉환 3대의 비원’) 아들은 노년에 이르러서도 아버지 일을 떠올리면 피눈물이 났다. 시인은 아버지가 남긴 글을 모아 문집을 편찬하며 “털을 뽑아 붓을 만들고, 흐르는 피로 먹을 대신하네.(拔毛爲不律, (녹,록)血代b미.)”(‘自挽’ 제11수)라고 썼다.
자식에게 아버지란 말은 다양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아버지가 내 삶의 원천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오늘도 어떤 이는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거리로 나설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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