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극 배우들 마음가짐은… “혼자 더 깊게 빠져들어요”
총 16명 인물 연기 손상규 “혼자 관객 만나는데 흥분… 컨디션 조절 더 신경”
극작-연출-배우 3역 이승우 “코로나 장기화 영향… 홀로 한풀이 굿판 벌일것”
4시간 넘게 공연한 양종욱 “관객들에게 더 큰 도전… 배우-관객 함께 성취감”
무대 위에 홀로 선 배우를 본 적이 있는가. 허공에 대사를 뱉고 혼자 넓은 무대를 오가며 몸짓한다. 온전히 한 명의 힘으로 공연장 공기를 움직이느라 어깨가 무거울 법도 하다. 관객에게도 1인극은 신선한 경험이다. 여러 배우가 함께할 때의 강한 에너지와는 달리 한 명이 뿜어내는 농밀한 힘을 체험할 수 있다. 1인극에서 관객과 배우는 극을 같이 만들어가는 동반자이면서도 러닝타임 내내 묘한 기 싸움을 벌이는 관계가 된다.
공연계에 1인극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정동환의 ‘대심문관과 파우스트’, 박상원의 ‘콘트라바쓰’, 차지연의 ‘그라운디드’에 이어 최근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발이 되기’ ‘일리아드’ 등이 관객과 만난다. 얼마 전 막을 내린 4시간이 넘는 1인극 ‘데미안’을 비롯해 성수연 배우가 맡은 국립극단의 SF 연극 ‘액트리스’ 시리즈도 화제였다.
팬데믹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제작 환경과 프로덕션 규모가 점차 축소하는 추세다. 규모가 작아지며 상대적으로 대작보다는 실험적인 극을 펼칠 기회가 늘어났고, 1인극도 그중 하나로 떠올랐다.
1인극에 도전한 배우들의 마음가짐은 어떨까. “텍스트가 1인 연기에 최적화되어 있을 뿐 다른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도 “혼자 더 깊게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1인극에 출연한 배우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27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손상규, 윤나무 배우가 선보이는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교통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은 열아홉 살 청년의 심장이 다른 사람에게 이식되는 24시간의 기록을 그렸다. 배우는 의사, 유족, 장기이식 수혜자 등 총 16명의 인물을 연기한다. 손상규는 “혼자 관객과 만나는 묘한 기대감과 흥분이 있다”며 “책임과 부담감은 다른 작품과 비슷한데 컨디션 조절에는 훨씬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오래전부터 숱한 1인극을 탄생시킨 서울 중구 삼일로 창고극장에선 13일까지 ‘발이 되기’를 공연한다. 바리데기 설화를 소재로 아동학대, 청년실업 등 사회 문제와 인간 존엄성을 말하는 창작극이다. 극작, 연출, 배우까지 모두 이승우가 맡았다. 그는 “작품 준비 과정부터 무대에 서기까지 외로움과의 싸움이었다. 공연계가 힘든 요즘 혼자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 현실적 어려움도 반영돼 1인극이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작품을 “한바탕의 굿”으로 정의한 그는 “한 굿판에 여러 무당이 참여하지 않듯이 홀로 한풀이를 해보려 한다”고 했다.
황석정 최재웅 김종구가 내레이터이자 배우로 출연하는 1인극 ‘일리아드’는 29일 개막해 9월 5일까지 서울 종로구 CJ아지트 대학로에서 공연한다. 고대 그리스의 영웅 서사시 ‘일리아드’를 각색했다. 트로이전쟁의 마지막 해를 배경으로 아킬레스, 헥토르 등 신화 속 인물들과 전쟁으로 터전을 잃은 이들의 이야기가 단 한 명의 배우에 의해 펼쳐진다. 황석정은 “16개 역할을 하는 게 가능할지 걱정했는데 실제 연습해보니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더 도전하고 싶다. 배우로서 큰 실험이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막을 내린 ‘데미안’은 4시간이 넘게 양종욱이 무대에서 원작 소설 ‘데미안’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양손프로젝트 대표로 꾸준히 1인극에 참여한 그는 “연극 작가가 된 기분이었다”며 “작품을 온전히 혼자 맡다 보니 개인적인 성향, 연기가 크게 반영되는 매력이 있다”고 했다. 그는 “관객들이 걱정하는 만큼 지치거나 힘들진 않았다”며 “긴 시간 작품을 봐야 하는 관객들에게 더 큰 도전이었다. 배우와 관객이 4시간 공연을 마친 성취감을 함께 느낀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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