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초상화가 엘리자베스 페이턴展
량차오웨이 등 유명인 초상화 선봬
실물 아닌 매체 속 사진 보며 그려
회화-판화 11점 소개, 8점 신작… 다음달까지 리안갤러리 무료전시
엘리자베스 페이턴이 자신의 조수를 그린 작품 ‘Lara’(왼쪽 사진). 가로 26cm, 세로 35.9cm인 작은 종이에 그린 수채화다. ‘Tony Leung Chiu-Wai(Happy Together)’는 홍콩 영화배우 량차오웨이의 옆모습을 담았다. 리안갤러리 서울 제공
크기와 인상은 비례하지 않았다. 가로 27.9cm, 세로 35cm. 성인 남성이 한 손을 펼치면 가려지는 크기의 화폭. 빠르고 거침없이 지나간 붓의 자리는 종이에 고스란히 남았다. 그 속에 박제된 인물들의 모습은 몽환적이다. 미국 초상화가 엘리자베스 페이턴(56·여)은 A4 용지만 한 캔버스에 자신의 개성과 존재감을 담아낼 수 있는 화가다.
그의 첫 국내 개인전이 서울 종로구 리안갤러리에서 15일 열렸다. 페이턴은 유명 인사들의 초상화를 감성적으로 그리는 데 탁월한 실력을 발휘해왔다. 1987년 미국 뉴욕 시각예술학교를 졸업한 그는 1993년 데뷔했다. 이후 베니스 비엔날레(1995년), 휘트니 비엔날레(2004년)에 참여했다. 2006년, 이전 3년간 현대 미술계에 영향을 준 예술가에게 수여하는 래리 올드리치상을 받는 등 미술계에서 호평을 받아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와 판화 11점이 소개된다. 이 중 8점은 그가 국내 전시를 위해 새로 그린 작품이다. 그는 1년에 약 20점만 그릴 정도로 다작을 하는 작가는 아니다.
전시에서 단연 눈에 띄는 작품은 ‘Tony Leung Chiu-Wai(Happy Together)’(2021년). 페이턴은 이뤄질 수 없는 관계를 그리며 고통스러운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영화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 두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영화 ‘해피 투게더’(1997년)의 주인공 량차오웨이(梁朝偉)의 옆모습이 감각적인 색조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유화임에도 얇고 부드러운 붓질로 수채화처럼 표현했다.
작가 자신의 삶도 그림의 소재로 사용했다. 그와 2년가량 인연을 맺은 조수를 그린 ‘Lara’(2021년)가 대표적이다. 보랏빛인 듯 분홍빛인 듯 파스텔톤 색감으로 표현된 조수의 얼굴은 몽환적이다. 세밀한 묘사는 생략됐다. 전체적인 느낌과 선, 붓 자국, 물감의 흐름만으로 충분하다. 작가는 불명확하게, 때로는 아마추어처럼 인물을 그리며 내면에 담긴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페이턴은 거울에 비친 자화상도 그렸다. 판화 ‘Reflection’(2021년)은 페이턴이 이번 전시를 앞두고 그린 자화상이다. 판 위에 잉크를 올려 찍어내는 기법(모노타입)을 사용했는데, 제목은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자, 삶을 되돌아보는 의미를 담아 종이 위에 다시 찍어냈다. 단단한 인상이지만 흩날리는 듯한 선과 푸르스레한 색조가 맞물려 병약한 느낌도 준다.
그의 초상화는 실제 인물을 보고 그린 게 아니다. 대중매체에 실린 사진 등을 참고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진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묘한 친밀감이 느껴진다. 사진을 그대로 베끼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색과 선으로 재창조했기 때문이다. 페이턴은 “사람의 얼굴에는 시간, 역사, 개성 등 많은 게 담겨 있다”고 했다. 다음 달 31일까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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