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트 감독의 다큐 ‘누렁이’
동물보호단체 활동 아내와 함께
4년간 한국 오가며 다큐 만들어
“선입견 줄어… 결정은 한국의 몫”
개 200마리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경기도의 한 개농장에서는 귀가 뜯겨져 나간 개들이 우리 밖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동물보호단체는 보신탕집 앞에서 식용견 반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식당 주인은 이들에게 호스로 물을 뿌린다.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개소주를 파는 상인이 요크셔테리어를 “우리 집 식구”라고 소개하는 아이러니도 펼쳐진다. 10일 유튜브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누렁이’의 장면들이다.
개고기를 둘러싼 논쟁의 한복판에서 선 이는 놀랍게도 미국 드라마 제작자 케빈 브라이트(66). 인기 시트콤 ‘프렌즈’ 전 시즌을 만든 브라이트는 동물보호협회 ‘도브’에서 활동하는 아내와 함께 4년간 한국을 오가며 누렁이를 만들었다. 다큐는 식용견과 개농장을 둘러싼 한국 내 찬반 논쟁을 담았다. 18일 화상으로 만난 브라이트 감독은 “아내를 따라 한국에 왔다가 식용견 문화를 접했다. 한국과 같은 경제와 교육 강국에서 개고기를 먹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개고기 산업 종사자부터 동물보호단체, 일반 시민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프렌즈 전 시즌을 이끈 제작자지만 누렁이 촬영은 그에게도 도전이었다. 그는 “프렌즈는 100명이 넘는 스태프가 에어컨 빵빵한 스튜디오에 모여 1주일에 에피소드 1개씩 만들었다. 반면 누렁이는 저를 포함해 5명의 스태프가 무더운 한여름, 추운 겨울에 개농장을 돌아다니며 촬영했다. 1인분의 역할이 명확했기에 나도 같이 짐도 날랐다”고 말했다.
브라이트 감독도 촬영 시작 전에는 한국 개고기 문화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대한육견협회 대표, 개농장 운영주 등 육견업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의 입장도 이해하게 됐다. 그는 “한국전쟁 후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국가였을 때 단백질 공급원이 없어 개고기를 먹게 된 역사적 맥락이 있다. 현재 개농장을 운영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농장을 운영하는 영세한 이들도 많다. 이러한 이해 없이 ‘한국인은 개고기를 먹는 민족’이라고만 바라보는 건 인종차별적인 편견”이라고 전했다.
4년간 한국 개고기 문화를 취재한 그는 “결정은 한국의 몫”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고기 산업을 지속한다면 다른 음식과 마찬가지로 개고기의 육성부터 유통까지 어떻게 법적으로 제대로 관리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반대로 개고기 산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매년 200만 마리씩 유통되는 강아지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개고기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상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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