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을 취급하는 식당에 가면 벽면 어딘가에서 국민 식생활 지침들을 읽게 된다. 한식의 간이 세서 위암 원인으로 부각될 때는 저나트륨 권장 문구가 보이는가 하면 잔반 재활용을 금지하는 표시도 간혹 보인다.
한식당 주인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 빠지지 않는 내용이 반찬 줄이기다. 봉고차가 승합차의 대명사가 된 것처럼 수십 가지 반찬이 차려진 밥상을 가리켜 어떤 이는 ‘전라도식 밥상’이라고 부른다. 요즘 상차림에서 이런 밥상을 지양해야 하는 건 식재료 낭비를 막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함이다. 앞으로 우리 밥상이 나아갈 길은 줄줄이 나오는 반찬이 아니고 정갈한 몇 가지 반찬에 집중된 상차림이다. 그러나 막상 식당에 가면 반찬이 많아 이걸 먹을까 저걸 집을까 고민할 때가 즐거운 게 솔직한 심정이다.
얼마 전 필자의 속마음을 들킨 전라도 밥상을 만났다. 전남 목포시 여객터미널 주변은 관광객들의 방문이 잦은 곳이다. 평소 버스기사들이 많이 찾는 식당이 있다기에 가보았다. ‘남해밥상’은 해산물을 다루는 여느 식당처럼 입구에 수족관이 있는 평범한 모습이다.
메뉴를 보니 정신없이 많다. 혼란에 빠져 주 종목을 물으니 낙지와 갈치를 추천했다. 갈치조림을 주문했는데 조림 국물이 꽤나 흥건했다. 국물에 빠질 것 같은 조림이라 의아할 정도. 빨간 국물은 보기와 달리 자극적이지 않고 슴슴했는데 모두 먹을 때까지 생선살이 촉촉했다. 내친김에 수족관 낙지가 궁금해 낙지덮밥도 시켰다. 1인분 양이 많아 놀랐는데 질기지 않고 보들보들한 낙지 식감이 남달랐다. 신선한 해산물임이 저절로 느껴졌다. 놀라운 건 차려진 반찬 가짓수가 많았지만 구색으로 놓인 게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다. 철마다 바뀐다는 생선 구이로 황금조기가 나왔는데 정성스레 배를 갈라 노릇하게 구운 후 양념장을 올렸다. 메인 요리라 해도 손색이 없다. 바닷장어 튀김, 생선회무침 등 제대로 된 바다 재료로 조리한 반찬들이었다.
남해밥상 이승주 사장은 경기 용인시에서 큰 횟집을 운영하다 실패한 뒤 10여 년 전 처가가 있는 목포로 내려와 부둣가에 가게를 열었다. 낮과 밤을 아내와 교대하며 식당을 운영했다. 이곳은 선주들이 가져오는 싱싱하고 다양한 해산물과 그의 요리 실력이 어우러져 만만치 않은 내공을 갖춘 심야식당이 됐다. 남해밥상은 이른바 ‘사진발’ 좋은 화려한 상차림은 아니다. 주인장 스스로도 밤낮 바빠서 해산물로 멋을 부릴 시간은 없다고 말한다.
오늘도 반찬 가짓수를 줄이고 단출한 상차림을 추구하라며 외식 교육을 하고 있다. 하지만 깊은 맛을 자랑하는 수많은 반찬이 당기는 건 인간 식욕의 솔직함이라는 궁색한 변명을 남기며 이 식당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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