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 이주 아동 현실 담은 신간 ‘있지만 없는 아이들’ 펴낸 작가 은유
약 10개월간 5명 심층 취재하며 일상 속 배제-좌절의 아픔 담아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이주 가정 4남매 중 2명만 한국서 태어나
나머지 두명은 추방당할 처지
“저조차도 은연중에 ‘의사 전달이 서툴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했어요. 자기 존재에 대해 너무 오래 고민해 온 아이들이라 또래보다도 성숙한 표현을 할 줄 아는 친구들이었는데도요.”
지난해 7월부터 약 10개월간 미등록 이주 아동 5명의 이야기를 심층 취재해 신간 ‘있지만 없는 아이들’(창비)로 펴낸 작가 은유(필명·50)가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한 이 책에는 국내에 2만 명 정도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 미등록 이주아동들이 일상에서 어떤 배제와 좌절을 겪는지 생생하게 담겼다.
은유 작가는 산업재해로 인한 죽음을 기록한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돌베개),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인터뷰집 ‘폭력과 존엄 사이’(오월의봄)를 출간하는 등 예리한 시선으로 사회의 아픔을 바라보고 목소리를 내 왔다. 그를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한국에서 15년을 살았어도 아무 삶의 기반이 없는 아이들이 있어요. 어릴 때 한국으로 이주해 국어나 한국사를 가장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고요.”
책의 6, 7번째 장(章)에서 다루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남매 카림(22)과 달리아(20)는 각각 네 살, 두 살 때 이주 노동자인 부모를 따라 한국에 와서 쭉 살았지만 현재 고등학교 2학년, 1학년인 두 동생과 생이별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4월 법무부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발표한 ‘국내 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의 대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한국에서 출생해 15년 이상 체류하고, 국내 중·고교에 재학 중이거나 고교를 졸업한 이들에 대해서만 국내 체류 비자를 신청할 수 있다고 밝혔다. 카림과 달리아는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아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은유 작가는 “당장 제가 인터뷰한 아이들끼리도 운명이 갈린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프다”며 “카림 남매처럼 백석(본명 백기행·1912∼1996)의 시를 사랑하고 한국어 글쓰기에 재능이 뛰어난 이들에게 꽃필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책에는 2017년 동아일보의 미등록 이주 아동 기획 시리즈 ‘그림자 아이들’에 보도됐던 페버(22)의 이야기도 소개됐다. 당시 페버는 불법 체류 사실이 발각돼 추방 명령을 받고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구금된 상태였다. 이 보도를 계기로 국민적 관심이 생기면서 페버 씨에 대한 추방 명령이 취소됐고, 그는 현재 취업비자를 받아 합법적으로 일하고 있다. 은유 작가는 “아직도 미등록 이주자에 대한 기사에 부정적인 댓글이 달리기도 하지만 이런 식으로 세상을 자꾸 시끄럽게 하는 게 궁극적으로는 미등록 이주자의 인권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주 노동자들의 노동력이 한국에 필요하기 때문에 살게 해 줘야 한다”고 말한다. 일견 타당한 논리이지만 은유 작가는 그 너머의 세상을 꿈꾼다.
“사람이 다 필요해서 존재하나요? 그냥 살아 있으니까 살아가는 거지요. 언젠가는 한국 사회가 미등록 이주자를 포함한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서로 쓸모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문화로 발전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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