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 향기가 바람에 실려 콧속으로 파고든다. 전시장 바닥을 밟자 모란이 하나둘 피어난다. 비밀의 모란 정원 같은 전시장 곳곳엔 모란 무늬를 담은 조선왕실 유물 120여 점이 자리 잡았다.
모란 무늬가 사용된 가구, 의복 등 유물을 통해 조선 왕실 문화를 살펴보는 특별전 ‘안녕, 모란’이 7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개막했다.
조선 왕실은 왕실의 번영과 풍요를 기원하는 뜻에서 생활 곳곳에 모란 무늬를 사용했다. 왕실의 위엄과 화려함을 강조하기 위해 혼례복 등 혼례용품은 물론이고 병풍, 가마 등 장례용품에도 모란꽃 무늬를 애용했다.
전시 유물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모란 무늬가 수놓인 활옷(궁중 여성 혼례복)이었다. 창덕궁에서 발견된 후 1980년대부터 고궁박물관에 보관돼 온 이 옷은 보존 처리 작업을 거쳐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주인을 알 수 없는 이 활옷에는 옷 형태를 유지하기 위한 종이심이 들어 있었는데, 조사 결과 1880년에 작성된 과거 시험 답안지로 드러났다. 낙방한 이들의 답안지를 재활용한 것. 전시장에선 혼례용품과 장례용품 외에도 장신구 상자 등 생활용품, 허련의 모란 그림 화첩 등 18, 19세기에 활동한 화가들의 모란 그림도 볼 수 있다.
전시장에는 실제로 모란향이 퍼져 관객들이 모란에 빠져들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올봄 창덕궁 낙선재 뒤뜰 화계(花階·계단식 화단)에서 모란 향기를 포집한 다음 이를 재현한 합성향료를 만들어 활용했다. 전시장 한편에는 모란 정원을 만들고, 새소리와 빗소리를 들을 수 있게 했다. 벽면과 바닥에 흐르는 모란 무늬 영상과 살랑이는 바람은 조선왕실 모란꽃 정원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휴식하는 듯한 효과를 준다. 전시는 10월 31일까지. 사전 예약과 현장 접수를 통해 시간당 100명, 일일 최대 1000명까지 관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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