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은 모르지. 우리가 얼마나 높이 나는지~. 우리가 얼마나 멀리 날으는지~”(정광태·이태원 ‘도요새의 비밀’) “마도요! 젊음의 꿈을 찾는 우린 나그네. 머물 수는 없어라~”(조용필 ‘마도요’)
도요새는 지구의 순례자다. 붉은가슴도요의 다리에 표식을 한 후 12년 만에 포획을 해보니 평생 52만km의 거리를 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필립 후즈라는 과학자는 100g 정도에 불과한 이 새가 날아다닌 여정이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38만km)보다 더 길다고 해서 ‘문버드’(Moon Bird)라는 애칭을 붙여주고 감동적인 관찰기를 책으로 남겼다.
● 지구에서 달까지…알락꼬리마도요의 여행
경기 화성호 습지에도 수많은 도요새 종류가 찾아온다. 그 중에서 긴 부리와 알록달록한 깃털을 자랑하는 ‘알락꼬리마도요’는 화성습지를 찾는 마도요의 40%를 차지하는 종으로 화성시를 상징하는 ‘시조(市鳥)’다. 이 새는 북극권인 시베리아에서 짝짓기와 알을 낳고, 남반구의 끝자락인 호주, 뉴질랜드에서 월동을 한다. 매년 2만7000km가 넘는 거리를 왕복해야하는 가혹한 운명을 타고난 새다.
호주에서 긴 월동기간을 보낸 이들은 3~5월이 되면 먼 길을 떠나기 전에 장거리 비행에 필요한 에너지를 축적한다. 자기 몸무게의 거의 두 배에 이르는 먹이를 먹어치우며 2주만에 체중이 급격하게 불어난다. 에너지가 지방으로 저장되는데 출발 직전의 도요새를 만져보면 마치 물풍선처럼 출렁일 정도라고 한다. 언제든지 연소할 수 있는 고효율 연료로 꽉 채워둔 상태인 것이다.
대집단을 이루어 출발하는 알락꼬리마도요의 목적지는 한반도 서해안. 태평양을 건너오는 1만km의 구간 동안 먹이는 물론 물 한 모금도 못마시고, 날개를 접고 쉬거나, 잠도 자지 못한다. 오리처럼 물 위에 떠 있을 수 없는 도요새는 물에 빠지면 끝이기 때문이다. 폭풍우가 몰아쳐도 피할 곳은 없다. 무리에서 떨어지면 죽음 뿐이다. 이렇게 도착 전에 30%는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서해안에 도착할 때 쯤이면 몸무게가 40%이상 줄어들게 된다. 한 조류학자는 “도요새들은 갯벌에 다리보다 부리가 먼저 닿는다”고 했다. 완전히 탈진한 상태라 먹이를 보충하는 것이 시급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알락꼬리마도요는 화성의 갯벌에서 긴부리로 칠게나 갯지렁이를 잡아먹으며 체력을 회복한다. 여름에 시베리아로 날아가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고 9~10월에 다시 한반도 서해안을 찾는다. 갓 태어난 새끼들도 화성호 습지에서 체력을 보충한다. 그리고 겨울에 다시 호주까지 1만km를 날아가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겨울철 호주에서는 알락꼬리마도요가 돌아올 즈음이면 떠들썩한 축제를 연다. 종을 울리며 무사히 돌아온 도요새를 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매년 4월이면 북반구로 떠나는 알락꼬리마도요 등 여러 도요새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기원하며 모자를 흔들며 휘파람을 불고 기도문을 외우는 도요새 환송식을 진행한다고 한다.
그러나 호주에서는 매년 알락꼬리마도요의 숫자가 매년 30% 이상씩 줄고 있다. 호주에서 아무리 극진히 보호한다고 해도 중간기착지인 한국과 중국의 황해안 갯벌이 개발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환경과학원의 조사결과 전세계 알락꼬리마도요 집단의 4분의 1이 넘는 개체가 한국을 거쳐간다. 중간기착지에서 체력회복을 못한 도요새는 죽거나, 번식에 성공을 하지 못한다. 새들의 몸 속에 수만년 저장돼 온 생체시계와 자기장을 읽는 네비게이션 능력을 활용해 매년 지구 반바퀴를 도는 원대한 꿈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장거리이동 철새들의 멸종을 막기위해서는 어느 한 나라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현실이다. 이를 위해 호주와 뉴질랜드, 러시아, 알래스카, 중국, 한국, 북한, 동남아국가 등 18개국이 참여하는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 파트너십(EAAFP)’이 결성됐다. 화성 습지도 2018년 EAAFP에 의해 국제적 희귀종 및 다양한 철새이동경로 네트워크 서식지 보존지역으로 공식 지정됐다. 화성습지는 람사르 국제협약 보존습지 등재도 진행 중이다.
● 수도권 최후의 새들의 천국, 화성 습지
이달 초에 박혜정 화성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과 함께 화성 습지를 탐사했다. 화성방조제를 통해 철새보호구역 안으로 들어가자 갈대밭에서 짝짓기를 위해 노래하는 수많은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특히 휘파람새과의 개개비가 울어대는 소리는 정겨웠다. 고요한 호수에 펼쳐진 드넓은 갯벌, 갈대군락과 염생식물 사이를 걸으며 고독한 사색에 잠기는 맛도 좋았다.
박 사무국장이 어깨에 둘러맨 필드스코프 망원경을 통해서 바라보는 저어새, 물닭, 뿔논병아리, 검은머리물떼새, 노랑부리백로 등의 멸종위기 희귀새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모습에 가슴이 떨렸다. 박혜정 사무국장은 “화성호 습지는 청소년 저어새들이 맘껏 놀 수 있는 ‘홍대 앞 핫플레이스’”라고 설명했다. 서해안 인근 무인도에서 태어난 어린 저어새들이 화성 갯벌에서 스푼처럼 기다랗고 넓은 부리를 휘저어가며 새우나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연습을 하며 성장하는 곳이라는 설명이다.
화성습지는 매향리 갯벌과 화옹지구 간척지를 합쳐서 일컫는 말이다. 2002년 궁평항과 매향리를 잇는 방조제(9.8km)가 완공되며 만들어진 인공호수가 화성호다. 시화호의 교훈 이후 해수유통을 막지 않아 화성 습지에는 바닷물이 오가는 갯벌,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기수 지역, 담수 습지가 어우러지면서 다양한 생태계가 형성됐다. 이곳은 노을을 배경으로 새들이 노니는 평화로운 풍경은 사진작가들에게는 촬영 명소이기도 하다.
봄가을 도요물떼새 이동시기에는 하루 3만~5만 마리의 새들이 관찰된다. 이곳에서 발견되는 조류 90종 중 25종이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 야생생물이다. 지난달 28~29일 이상철 박사(인천대 생물자원환경연구소)와 화성환경운동연합 시민생태조사단이 진행한 조사에서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 위기종인 ‘수원청개구리’도 서식하는 모습이 확인됐다. 이상철 박사는 “2020년 KBS 다큐제작팀이 촬영 중 화성간척지에서 처음으로 수원청개구리를 발견했으나 간척농지 주변으로 서식환경이 나빠져 번식과 생존에 대한 우려가 컸는데 다행”이라며 “양서류는 오염에 매우 민감하다”고 말했다.
한국의 서해안 중에서 도요새를 비롯해 장거리 이동철새가 가장 많이 찾던 곳은 새만금 갯벌이었다. 하루 10만 마리의 새들이 관찰됐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긴 33km의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된 후 철새들이 갈 곳을 잃었다. 평택항과 공단 조성, 시화호 간석지 매립, 인천 신도시·공항 건설 등으로 서해안 갯벌들이 큰 폭으로 사라진 후 화성 습지는 수도권에 남은 대규모 습지다. 특정 지역의 갯벌이 사라지면 새들은 다른 곳으로 날아가지 않을까? 이에 대해 박혜정 화성환경운동연합사무국장은 “새들의 몸에는 유전자처럼 네비게이션이 장착돼 있기 때문에 매년 날아오는 곳에 기착한다”며 “수천km를 기진맥진해서 날아왔는데 영양보충을 할 갯벌이 사라져 있으면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고 대부분 죽는다”고 말했다.
습지 해양 생태계가 흡수하는 탄소를 뜻하는 ‘블루카본’은 탄소 흡수속도가 육상의 숲생태계보다 최대 50배 이상 빠르고, 수천년 동안 탄소를 저장할 수 있어 지구온난화 문제가 심각한 현재 매우 주목받고 있다. 갯벌의 관광, 산업 등 경제적 가치도 농경지의 100배, 숲의 10배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화성 습지 보존에도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국방부가 2017년 수원 군공항의 예비이전후보지로 철새들이 가장 많이 찾는 습지인 ‘화옹지구 간척지’를 지정했기 때문이다. 군공항의 전투기들에겐 새들이 엔진으로 빨려들어가 발생하는 ‘버드 스트라이크’가 가장 위험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군공항에서는 제트엔진 소음에 더해 폭음탄이나 초음파를 쏘아대철새들을 쫓아내는 부대를 운영한다. 수도권 개발에 밀려 화성호 습지에 찾아오는 새들의 천국이 또다시 위기에 처한 것이다.
● 공룡알화석산지=화성에 이런 땅이? 경기 화성시 고정리의 440만 평의 땅에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지대처럼 너른들판에 갈대, 띠, 산조풀, 염생식물이 펼쳐져 있다. 1990년 공룡알 화석이 발견된 이후 현재까지 12개 지점에서 30여개의 알둥지와 200여개의 공룡알 화석이 발견된 백악기 공룡들의 집단 서식지이다. 풀들 사이로 나 있는 산책로를 걷다보면 그랜드캐년에 온 듯한 황량함과 고독함에 빠져든다. 공룡알 화석이 발견된 ‘누드 바위’는 예전에 달력이나 잡지에 실렸던 누드 사진을 촬영하던 명소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원래 바다와 갯벌이었던 곳이 육지화하면서 생태 변화를 관찰할 수 있고, 너구리, 고라니, 토끼 등의 다양한 생물도 만난다. 다큐멘터리 ‘공룡의 땅’, 드라마 ‘무사 백동수’의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어 이국적 풍경 속에서 한 시간 정도 가볍게 여행하기 좋은 길이다.
● 가볼만한 곳=낙조(落照) 명조로 유명한 궁평항은 주변에 해송군락지와 갯벌이 잘 보전돼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해송숲길 주변에 주차장과 유스호스텔이 들어서는 공사를 마친 후에는 접근이 더욱 쉬워질 전망이다.
50년간 미공군 폭격훈련장으로 사용됐던 매향리 갯벌에는 ‘매향리 평화생태공원’이 조성됐다.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평화기념관이 세워져 이 지역의 랜드마크 건물이 될 전망이다. 평화역사관에는 매향리에서 수거한 녹슨 포탄과 탄피를 소재로 생명과 사랑,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설치 작업을 감상할 수 있다.
전곡항 마리나는 서해안 최대 요트 정박지로 밀물과 썰물에 관계없이 200여 척의 요트와 보트가 수시로 다닌다. 요트에 오르고 바다를 향해 나아가면 오른쪽으로는 안산의 누에섬과 탄도항이, 왼쪽으로는 제부도가 펼쳐져 가슴이 확 뚫린다. 요트 체험은 전곡항 내 여행스테이션 요트보트매표소를 이용한다. 1시간 반짜리 코스의 경우 한 명당 3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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