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집 ‘날마다 만우절’ 펴낸 윤성희
노년 여성 유쾌한 인생 분투기 그려
“할아버지 주인공 작품도 쓸 것”
어느 날 60대 후반의 할머니가 아파트 놀이터에서 킥보드를 훔친다. 손잡이에 거북 모양의 스티커가 붙어 있고, 발판에 이름이 떡하니 쓰여 있는 분홍색 킥보드다. 할머니는 왼발을 발판에 올려놓고 조심스럽게 오른발로 땅을 밀쳐 본다. 바퀴에 반짝반짝 불이 들어온다. 그날 이후 할머니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킥보드를 탄다. 매일 밤 킥보드에 몸을 싣고 아파트 단지를 누비며 노래를 부른다. “따르릉! 따르릉!”
윤성희 작가(48)가 7일 펴낸 6번째 단편소설집 ‘날마다 만우절’(문학동네)에 실린 ‘어느 날’의 내용이다. 발간 다음 날 전화 인터뷰로 만난 윤 작가는 “할머니들도 가끔 킥보드를 타며 스트레스를 풀어야 삶에 숨통이 트여 다음 날 다시 일어나 밥을 해 먹지 않겠냐”면서 “팍팍한 삶을 용기 있게 마주하는 노년 여성들을 그리고 싶었다”며 웃었다. 그는 “우리는 나이가 들어도 원숙해지지 않는다. 불안정한 10대가 있듯 불안정한 60대가 있는 게 인생”이라며 “대단히 멋지게 늙지 않아도,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는 할머니가 돼도 괜찮다는 위로를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일상의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를 포착해 감성을 부여한 그의 시선이 이번엔 노년층 여성으로 향했다. ‘어제 꾼 꿈’은 손자가 갖고 다니는 소원 성취 막대기를 휘휘 저으며 “딸이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할머니의 삶을 포근하게 비춘다. 암에 걸렸다는 통보를 받은 뒤 자신과 원한 관계에 있는 유명 국숫집 주인에게 욕을 하러 가는 할머니를 등장시킨 ‘남은 기억’은 노년 여성의 해학을 에둘러 전한다. 왜 40대 후반인 작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에게 주목했냐 묻자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답했다.
“할머니들은 기억이 켜켜이 쌓인 만큼 사연이 많아 자동으로 다층적인 캐릭터가 돼요. 한국 사회의 여러 굴곡을 거친 만큼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죠. 우리 시대 할머니 대부분이 겪은 전쟁, 가난, 병치레에 대한 기억을 그리면 많은 독자들이 공감할 거라 생각했어요. 제가 과거 시대를 겪지는 않았지만 주위에서 만날 수 있는 노년 여성의 여정을 진실하게 담으려고 했어요.”
‘여름방학’에서는 은퇴한 노년 여성이 살아갈 용기를 찾기 위해 아이들이 뛰어노는 분수대에 몸을 던진다. 속옷이 비칠까 잠시 걱정하다가도 외부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기로 결심하며 동심으로 돌아간다. 그는 “할머니들이 어떤 순간에 행복했을까 생각하다 보면 저절로 그들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곤 한다”며 “노년 여성이 자신이 겪어온 과거를 회상하되 회한과 비애에는 젖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직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을 제대로 써본 적이 없는데 앞으로 도전하고 싶다”며 “‘날마다 만우절’이라는 단편소설집 제목처럼 거짓말을 하는 소설을 통해 위로라는 진심을 전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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