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와 폭력이 교문 안에 국한된 문제라는 한국 사회 인식에 의문을 가졌다. 왕따는 한국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관찰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뉴질랜드 출신의 트렌트 백스 이화여대 사회학과 부교수는 9일 펴낸 ‘외국인 사회학자가 본 한국의 집단 따돌림: K폭력’(한울엠플러스)에서 학교폭력의 원인을 집단주의 문화에서 찾는다.
그는 2012년 한국에 온 뒤 ‘한국 청소년들은 어떻게 서로에게 그토록 잔인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됐을까’라는 의문을 품게 됐다고 한다. 그가 한국에 오기 직전 해인 2011년부터 2013년까지 한국에서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 등 심각한 사건이 여러 건 이어졌기 때문이다. 외국인 학자의 시각에서 한국의 학교폭력을 분석한 그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그는 홍콩대에서 사회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중국 청소년들의 인터넷 중독 문제를 연구했다. 한국에 온 그는 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선 문제를 일으킨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2011∼2013년 서울소년원에 위탁된 학교폭력 가해 중고교생 20명을 분석해 이 중 16명이 폭력적인 가정환경에 노출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이 부모의 폭력적인 훈육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가출뿐이었다. 그는 “부모의 학대 행위를 비난하기 전에 그 부모들도 상당수가 아동기에 학대당하고 방치된 경험이 있었다는 여러 연구 결과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신간에서 그는 한국의 따돌림 문화의 원인으로 군사정권 때 본격화된 집단주의 문화를 지목한다. 군사정권 시절 산업화 과정에서 개인은 위계적인 사회질서에 순응하며 이를 체화했다. 한국 사회의 수직적 집단주의 성향이 직장 선후배 관계나 부모와 자녀 관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 그런데 산업구조의 변화로 촉발된 개인주의가 기존의 집단주의 문화와 충돌하며 부작용을 가져왔다는 설명이다.
저자에 따르면 개인주의 사회의 특징은 소외다. 집단주의가 잔존한 한국 사회에서 개인들은 자신이 소외되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따돌리려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예컨대 학교에서 일진이 약한 학생들을 이른바 ‘셔틀’로 만들어 지배력을 행사하는 식이다. 그는 “한국의 따돌림은 집단에 의한 사회적 배척을 특징으로 한다. 이는 일대일 괴롭힘 위주의 서구 사회와 대조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교에서의 따돌림 문화를 끊기 위해서는 가해 학생들에 대한 다른 차원의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학교폭력 가해자들이 다른 이들과 친화적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이들의 부모가 권위주의 태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 그는 “가정에서 배운 게 학교와 직장에서 자녀의 행동을 형성한다”며 “비행 청소년에 대한 치료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부모에게 양육 기술을 교육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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