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살리기, 정부지원이 답?[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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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관들/로버트 단턴 지음·박영록 옮김/407쪽·2만2000원·문학과지성사


이호재 기자
이호재 기자
“죽어가는 서점과 출판사를 살리려면 정부 지원이 늘어야 한다.”

최근 국내 3대 대형서점 반디앤루니스를 운영한 서울문고가 부도 처리된 후 출판계 관계자들은 이같이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오프라인 서점 위주로 운영된 반디앤루니스가 직격탄을 맞았고, 오랜 출판계 불황으로 다른 서점이나 출판사들의 사정도 극히 나쁘다는 것. 출판사 관계자는 “국가가 세금이나 정책으로 출판계를 살리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정부가 지원을 늘려 결과적으로 출판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이 책에는 국가가 출판에 개입한 역사가 담겨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 기자와 하버드대 도서관장을 지낸 저자는 문헌을 샅샅이 뒤져 국가의 출판 통제를 고발한다. 예를 들어 18세기 프랑스 왕정 때 출판 검열관은 왕에게 유리한 책의 출간을 독려하면서 서문에 “매혹적 요소가 가득하다”고 극찬했다. 다른 검열관은 “달콤하고도 열렬한 호기심을 자극해 계속 읽고 싶게 한다”고 평가했다. 권력의 간섭이 드러나지 않게 여론을 조종하기 위해 채찍보다 당근을 쓴 것이다.

양서(良書)가 올바른 지식을 전달하고 국민의 교양을 높이기에 출판에 대한 공공 지원이 어느 정도 필요한 건 사실이다. 시장성은 낮더라도 내용이 충실한 책은 정부 지원을 통해 장려돼야 한다는 점도 인정한다. 하지만 국가가 지원을 미끼로 출판을 통제한 과거사가 담긴 책을 읽다 보면 출판계에 대한 정부 지원을 무조건 늘려야 한다는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가 힘들다. 정부가 지원만 하고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100% 지킬지 자신할 수 없어서다.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는 정권에 우호적이지 않은 작가에 대한 출간 지원을 배제하는 내용의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 출판계에 대한 정부 지원이 커질수록 정부가 출판계의 독립성을 침해할 가능성은 커진다. 이와 관련해 일부 출판인이 지원사업을 따내기 위해 친정부 인사들과 가깝게 지낸다는 소문이 들린다. 독서 인구 감소로 출판계가 정부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깝다.

출판계가 자생력을 얻기 위해선 독자를 매료시킬 작가를 찾는 게 우선이다. 출판인들은 “요즘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개탄하지만 독자들은 “쏟아지는 책 중에 읽을 만한 책이 없다”고 토로한다. 유튜버보다 재밌는 글을 쓰는 소설가, 블로그보다 의미 있는 정보를 전달하는 작가들이 나타난다면 독자들은 돌아올 것이다. 더불어 시민의 발길이 끊긴 오프라인 서점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런 노력 없이 정부 지원만 바란다면 출판계의 불황이 끝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출판계#정부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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