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이 선수를 넘기면서 반상 최대의 곳 우변은 흑의 차지가 되었다. 흑 87∼91로 백 한 점을 끊어 잡은 수가 어마어마하게 크다. 굳이 선수를 넘기지 않고도 둘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치리키 료 9단은 왜 이런 선택을 했던 것일까. 거기엔 이유가 있었다.
이치리키 9단은 후속 수단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백 88은 좌상귀 쪽 사활(백 A로 찝는 수가 있다. 흑 B엔 백 C로 빠지면 D의 곳이 자충으로 잡힌다)에 대해서만 선수가 아니다. 흑 89로 당장 지켜두지 않으면 상변 흑 대마가 잡힌다. 전보에서 백 ○로 치중할 때부터 이 수순을 봐뒀던 것이다.
백 90, 92는 지금의 형세를 좋다고 보고 쉽게 처리한 것인데, 약간 아쉬움이 남는다. 참고도처럼 백 1로 먼저 붙여서 흑의 응수를 물어보는 것이 고급스러운 행마였다. 흑 2부터 6까지 우변을 지킨다면 백 7∼11로 중앙을 입체화해 백의 우세를 보다 확실히 할 수 있었다. 이제 국면의 초점은 중앙. 중앙 삭감의 성패에 따라 이 바둑의 운명이 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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