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상과 현실, 그 사이에서 자아 찾기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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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커튼으로/강희영 지음/176쪽·1만2500원·문학동네

골목 양쪽 끝에 바리케이드를 세워 만든 무대 아닌 무대에서 패션쇼가 시작된다. 보란 듯이 눈을 감은 모델, 다민이 등장한다. 포토그래퍼를 꿈꾸는 차연은 이를 ‘묘기’라고 표현한다. 차연은 주인공처럼 나타난 다민을 꿈처럼 바라본다. 차연과 다민이 2010년 덴마크 어느 골목에서 처음 만난 순간이다.

2019년 장편소설 ‘최단경로’로 제25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강희영이 두 번째 장편소설 ‘녹색 커튼으로’를 출간했다. 작가는 20대 두 여성의 첫 만남을 연애의 시작처럼 묘사한다. ‘공원 초입에 이르러서야 뒤미처 깨달았지. 너의 머리색을 말이야. 햇살을 받고서야 네 머리카락은 숨겨둔 청록빛을 드러내며…’ 패션쇼 애프터 파티에서 술을 마시고 밤거리 거니는 젊은 두 사람은 매 순간 설렌다.

소설은 첫 만남 이후 포토그래퍼로 성장해가는 차연이 설렘을 잃고 변해가는 다민의 모습을 카메라 렌즈로 포착하듯 전개된다. 다민은 모델이라는 직업과 패션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패션은 이제 순간의 유행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패션을 덧입은 모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사실 동경이 아니라는 허탈함이었다.

다민은 결국 모델 일을 관둔다. “내 옷을 만들 거예요. 모두를 위한 옷을요.” 이후 다민이 연 패션쇼는 퍼포먼스에 가깝다. 녹색 장막을 걷고 벗은 몸으로 등장한다. 옷으로 가득 찬 대형 가방에서 옷을 꺼내 입고, 고개를 갸웃거린 뒤 벗기를 반복한다. 20여 분 동안이나. 그게 전부다. 다민은 잠적한다.

차연은 다민을 그리며 말한다. ‘받아들인다. 네 뜻을. 이제 정말 다 이해한다’라고. 소설은 순식간에 들끓었다가 사라져버리는 유행의 시대에 진정한 자아란 무엇인지를 묻는다. 패션과 사진, 모델과 포토그래퍼를 소재로 삼았지만 누구나 해봤을 법한 젊은 시절의 고민이 곳곳에 깔려 있다. 책을 읽으며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이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상#현실#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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