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2020 도쿄 올림픽 중계 사흘 만에 대형 참사를 잇달아 일으키면서 국내외 비난이 쇄도하자 박성제 사장이 뒤늦게 사과에 나섰다. 그러나 책임자 문책이나 구체적인 재발 방지책이 없어 ‘알맹이 없는 사과’라는 비판까지 더해지고 있다.
박 사장은 26일 서울 마포구 MBC 경영센터에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방송을 했다. 상처 입은 해당 국가 국민과 실망한 시청자에게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MBC가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한 국가들의 주한 대사관에 사과 서한을 보냈으며, 외신에도 사과문을 보내겠다고 밝혔다. 박 사장은 “내부 심의 규정을 강화하고 콘텐츠 적정 심사위원회를 만들어 재발을 막겠다”고 했지만 올림픽이 끝나고 정밀한 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을 뿐 구체적인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앞서 MBC는 23일 개회식 중계에서 특정 국가 소개에 모욕적인 내용들을 넣은 데 이어 25일 대한민국과 루마니아의 축구 경기를 중계하면서 자책골을 넣은 루마니아의 마리우스 마린 선수를 겨냥해 ‘고마워요 마린’이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MBC가 개회식 중계에서 우크라이나 소개에 체르노빌 원전 사진을 쓴 데 대해 이고리 데니수크 주한우크라이나 대사대리는 26일 뉴스1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언급된 것이 불편하다(uncomfortable)”고 밝히기도 했다.
이 같은 MBC의 잇단 참사에 “MBC의 올림픽 중계를 막아야 한다”는 여론부터 “MBC 전반을 쇄신해야 한다”는 요구에 이르기까지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MBC 시청자소통센터 홈페이지에는 “국가 망신 금메달” “수십 년 쌓아온 국가의 브랜드 이미지를 순식간에 말아먹는 능력자” “지상파 자격을 박탈하라”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주요 외신들도 연일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6일 “각국 TV 방송은 올림픽 선수단이 입장하는 시간을 사소하지만 유용한 정보(trivia nuggets)나 선수의 프로필, 지정학적 성찰로 채우며 (국민들의) 외교 및 국제적 인식을 키우는 계기로 만들 수 있다”면서 “그러나 한국의 한 방송사는 몇몇 나라에 ‘부적절한(inappropriate)’ 이미지를 골랐다”고 보도했다. 앞서 MBC의 개회식 중계 논란을 보도했던 미 CNN은 26일 웹사이트에 관련 기사를 또 게재했다. CNN은 “개회식은 시청자들이 친숙하지 않은 나라와 선수들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라며 “그러나 한국의 한 방송국(MBC)은 몇몇 나라를 묘사하면서 모욕적인(offensive) 고정관념을 사용했다. 지식의 격차에 다리를 놓는 데 보기 좋게(spectacularly) 실패했다”고 질타했다.
MBC노동조합(3노조)은 박 사장의 사과에 대한 성명을 내고 “많은 방송사 중에 왜 MBC에서만 상식 이하의 사고가 빈발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면서 “MBC의 전근대적인 차별 문화와 의식이 한꺼번에 외부로 노출된 게 도쿄 올림픽 중계다. 사장과 가까운 임직원에게도 공정한 문책이 이루어지는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논평을 내고 “MBC는 (소속 기자가 경찰을 사칭한) 취재윤리 위반으로 물의를 일으킨 지 얼마 되지 않아 참담한 사고가 연달아 발생하고 있다. 모든 콘텐츠의 제작부터 검수까지 전반을 쇄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MBC의 연이은 대형 참사는 재미와 경쟁만 추구하고 엄격한 검증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내부 분위기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MBC가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올림픽 중계를 내보내면서 국민적 신뢰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며 “외부의 간섭은 전혀 받지 않겠다는 MBC 내부 구성원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박 사장이 말한 제도 개선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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