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파리지엔’ 이미지는 만들어졌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31일 03시 00분


◇남의 나라 흑역사/위민복 지음/368쪽·글항아리·1만8500원

이 책의 파리지엔(Parisienne·파리 여자) 챕터를 읽으며 문득 20여 년 전 프랑스 파리에서 탄 기차가 떠올랐다. 당시 기차 내 흡연실이 있었는데 대여섯 명의 파리지엔이 뿜어대는 담배연기에 70대 할아버지가 연신 기침을 하고 있었다. 비흡연실 좌석이 모두 차 너구리굴에 온 모양인데, 파리지엔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같은 시기 한국에선 자유롭다는 대학에서마저 여학생들이 복학생 눈치를 보며 몰래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라 그 장면이 머릿속 깊이 각인됐다. ‘자신의 권리 앞에 당당한 파리지엔’이라는 선입견이 입력된 순간이다.

외교관인 저자는 이 책에서 파리지엔은 일종의 만들어진 이미지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파리지엔은 전설의 동물이다. 유니콘처럼 누구도 본 적이 없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는 프랑스 작가 장 루이 보리의 말을 인용한다. 그에 따르면 여성을 코르셋으로부터 해방시킨 코코 샤넬의 의복혁명이 마리 앙투아네트로 상징되는 18세기 프랑스 왕실의 사치와 결합돼 옷 잘 입는 파리지엔의 이미지를 형성했다. 여기에 브리지트 바르도와 잔 모로 등 프랑스 여배우들의 매혹적인 이미지가 더해졌다. 급기야 영국의 아장 프로보카퇴르나 일본의 콤 데 가르송처럼 브랜드 이름에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게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근대 이후 세상을 평정한 서구 문명권도 속살을 들여다보면 여타 문명과 다를 게 없고 모두 사람 사는 이야기일 뿐”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유럽의 이면을 보고 싶은 독자라면 한번쯤 볼 만한 책이다.

#파리지엔#남의 나라 흑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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