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경 씨(34)는 마라톤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강원도 홍천에 살며 달리고 있어 ‘홍천러너’로 불리는 그는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져 살면서 찾아온 외로움과 우울증, 그리고 과다 체중을 달리기로 이겨냈고, 이젠 매일 산과 들, 도로를 달리며 즐겁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
“2017년 5월 나이키 우먼레이스에 무작정 참가했어요. 하프코스 대회였는데 그동안 달리기는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죠. 운 좋게 출발 지점 앞에서 총성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당시 권투 등 운동을 열심히 하는 배우 이시영 씨가 참가했어요. 그래서 이시영 씨만 보고 달렸어요.”
한 10km를 지났을까. 힘이 들어 걷다 뛰기를 반복했다. 눈물도 나왔다. ‘내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지?’라는 자책도 했다. 그 때쯤 제한시간 2시간 30분 안에 못 들어올 주자들을 태우는 회수차량이 나타났다. 송 씨는 “차에 타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뛰어 제한 시간 안에 들어왔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아니 내 체력이 이것 밖에 안 되나?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비교적 어린 나이인 24살에 결혼한 뒤 사업상 홍천에 살다보니 외로웠고, 다소 느긋하게 살다보니 체중도 급격히 늘었다. ‘이래선 안 되겠다’며 집 근처 피트니스센터에 등록해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며 식이요법으로 다이어트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서울에서 하프마라톤이 열린다고 해 참가했던 것이다.
“결혼해 홍천에 살다보니 친구들을 만날 기회도 없었어요. 주변엔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아 어울리기도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소 우울했고 그렇다보니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게 됐고 살도 많이 쪘어요. 다이어트와 웨이트트레이닝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운동을 시작했어요. 그렇다고 제가 이렇게 달릴 것이라곤 생각 안했어요. 그런데 달리고 보니 완주했다는 자신감과 제 자신의 체력에 대한 실망감이 함께 찾아오는 거예요. 그래서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여성으로 하프코스에 첫 출전해서 2시간 30분 안에 완주했다는 것은 기본적인 체력은 된다는 얘기다. 다이어트를 위해 웨이트트레이닝을 한 덕분이다. 당시까지 최고 체중에서 10kg 정도를 감량하고 있었다.
“집 주변 홍천강을 달렸어요. 평일에 5~6km를 주당 2~3회, 주말엔 20km 이상을 달렸죠. 대회를 앞두곤 더 길게 달리기도 했죠. 풀코스를 완주하려면 장거리를 꼭 달려야 하거든요. 그리고 그해 10월 중앙일보jtbc마라톤에서 풀코스를 4시간 50분쯤에 완주했어요.”
어느 순간 달리기가 친구가 돼 있었다. 심신이 피곤해도 달리고 나면 너무 상쾌했다. 삶도 활기가 넘쳤다. 홍천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친구였다. 그 때부터 매년 42.195km 풀코스를 2~3차례 완주했다. 하프코스도 자주 참가했다. 풀코스 최고기록은 2019년 춘천마라톤에서 세운 3시간 45분대. 지금까지 풀코스를 7번 완주했다.
“달리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우울감이 사라진 것입니다. 달리고 나면 기분이 좋았어요. 외로움, 일하는 스트레스 등이 다 날아간 것입니다. 건강은 당연히 찾아왔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빼려고 했던 살이 다 빠진 것입니다. 달리면서 약 20kg이 더 빠졌고 제 최고 체중에서 약 30kg 감량했습니다. 지금은 매일 달리기 때문에 요요현상이 전혀 없이 똑같은 체중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송 씨는 달리면서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없어졌다는 것을 다시 강조했다. 운동생리학적으로 운동이 우울증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선진국을 비롯해 국내에서도 우울증 환자에게 운동을 처방하기도 한다. 송 씨는 “제가 달리면서 활기차게 살자 남편도 적극 달리기를 지지해주고 있다”고 했다. 대회 출전하면서 사귄 친구들도 큰 도움이 됐다. 서로 ‘파이팅’을 외치고 응원하면서 달리는 게 너무 좋았다. 대회 때만 잠깐 스쳐가듯 보는 ‘달리기 친구들’이지만 기록보다는 서로 힘이 돼주면서 즐기면서 달리는 게 좋았다.
2019년 10월 강원도 인제에서 열린 인제 K100 국제트레일러닝 대회 때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에 입문했다. 당시 대회 주최 측인 OSK(아웃도어스포츠코리아)가 트레일러닝 여자 세계랭킹 1위였던 미라라이(네팔)와 달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을 제공해 지원했는데 당첨되면서 산을 달리게 된 것이다.
“25km를 가볍게 함께 달리는 특별이벤트였는데 너무 좋았어요. 산도 달릴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죠. 제가 사는 홍천 주변엔 산이 많아요. 그리고 그동안 약 해발 400m인 홍천 남산에도 자주 올라가서 산에 대한 두려움도 별로 없었어요. 제게 딱 맞은 운동이었습니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이 발병해 모든 도로 레이스가 없어졌지만 소수 정예가 출전하는 트레일러닝은 계속 열렸다. 송 씨가 자연스럽게 산을 달리게 된 이유다. 그는 “산을 본격적으로 달리려고 했는데 코로나가 터졌다. 어차피 도로 대회가 다 없어지다 보니 주말엔 주로 산만 타게 됐다”고 했다. 올 5월 서울도성길 26km 대회도 참가했다.
요즘엔 오후 7시부터 달린다. 일을 마친 뒤 홍천강을 최소 30분에서 길게는 2시간 달린다. 주 2~3회. 웨이트트레이닝도 주 2회 이상 한다. 상하체 근육을 고르게 잡아줘야 부상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매주 산을 달리지만 무릎 발 관절에 전혀 이상이 없다. 허리 디스크도 있었는데 달리면서 아직 통증이 없는 것을 보니 오히려 관절 주변 근육이 강화돼 더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주말엔 무조건 산으로 가 3~4시간을 달린다. 산을 10~15km를 달리는 셈이다. 주변 월악산, 치악산은 물론 설악산도 달린다. 멀리 지방 원정도 간다. 모두 혼자 달린다.
“새벽에 차를 몰고 가 목표로 한 산 정상까지 올라갔다 집에 돌아와도 하루면 다 해결됩니다. 뭐 어차피 산에서는 함께 달리는 것도 큰 의미가 없습니다. 제가 좋아서 즐겁게 달리니 전혀 지루하지 않아요.”
먼 지방을 갈 경우에는 지역 역사 탐험의 기회로 생각한단다. 경북 경주에 가서 대회에 출전하기도 하지만 경주 곳곳을 돌아보며 신라의 역사도 느끼고 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사는 게 아주 좋다. 멀리 깔 땐 남편도 함께 가준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비교적 짧은 거리를 달렸지만 이젠 50km 이상을 달리는 긴 트레일러닝에 도전할 계획이다. 송 씨는 10월 열리는 서울둘레길 100K에서 50km를 도전한 뒤 11월에 열리는 트렌스제주에서 다시 50km 트레일러닝에 참가할 예정이다.
“솔직히 제가 아주 잘 달리지는 못하지만 입상권에는 들 정도입니다. 작은 대회에서 5~6위는 많이 했어요. 어차피 시작한 달리기니 큰 대회에서 꼭 5위 안에 들고 싶어요. 잘 달리는 사람들이 많아 쉽지 않겠지만 이렇게 목표를 설정하고 달리면 동기부여도 돼서 더 열심히 달리게 됩니다.”
송 씨는 달리며 새 인생을 살고 있고 이렇게 계속 달리며 살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이젠 달리기는 없어서는 안 될 ‘절친’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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