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명동대성당 주임 고찬근 신부
도쿄한인성당 사목하다 일시귀국… 日생활 4년째 안식년땐 혼자 지내
매일 노을보며 하느님묵상에 빠져… ‘신부되기’는 하느님이 준 축복 결론
김수환추기경 무엇보다 솔직한분, 주변 기대 순응위해 끊임없이 노력
엄연한 죽음, 초읽기 몰리기 전에 하느님체험-신자사랑 잘 준비해야
“붉은 노을 속에 떨어지는 해를 보며 인생의 아름다움과 그 끝을 생각했습니다. 매일매일 그렇게 변화무쌍하게 펼쳐지는 일몰의 광경은 신(神)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신의 맨 얼굴이었습니다.”
최근 출간된 고찬근 신부(61)의 단상집 ‘우리의 사랑은 온유한가’(달출판사)의 일부다. 사제의 길에 들어선 지 거의 30년 만에 안식년을 맞은 그는 일본 후쿠오카시 외곽 해변에서 다시 가야 할 길을 떠올렸다. 1989년 사제품을 받은 고 신부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소국장과 명동대성당 주임신부 등을 지냈다. 일본 도쿄한인성당에서 사목하다 일시 귀국한 그를 19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성당에서 만났다. ―어려운 시기 한국에 나왔다.
“거의 전쟁처럼 준비하고 나왔다. 자가 격리 면제 대상이지만 체온과 건강 상태 등을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보내고 있다. 홀로 지내는 88세 노모가 약해지셔서 뵙고 싶었다. 어머니는 오래전부터 마지막 선물이라며 안구 기증을 당부하셨다. 기증 받을 이를 위해 눈을 열심히 관리하고 눈에 좋다는 보조식품도 챙겨 드신다.”
―일본 생활은 어떤가.
“2018년 8월 명동 주임신부 임기를 끝내고 떠났으니 4년째다. 안식년 때는 후쿠오카시 외곽에서 밥하고 빨래하며 혼자 지냈다. 시계 없이 살았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그랬더니 하루 한 끼 먹게 되더라.” ―책에는 노을과 죽음에 대한 언급이 여러 번 나온다.
“죽음은 현재의 나를 잘 깨어 있게 해주는 삶의 일부다. 매일 노을을 보면서 ‘야, 하느님 작품 활동은 정말 왕성하네’라고 감탄하며 자연스럽게 하느님 묵상에 빠져들었다.”
―안식년 시기에 인생의 완전한 분해와 재조립이 이뤄졌다고 했는데….
“한국 나이로 서른에 신부가 됐는데 솔직히 그때는 너무 젊었다. 주변의 기도와 젊은 혈기에 ‘하느님을 인생의 모토로 삼겠다’ ‘평생 다른 사람에게 하느님을 전하겠다’ 이렇게 나선 것 아닌가 싶다(웃음).” ―재조립 결론은 무엇인가.
“신부 되기를 정말 잘했다는 것이다. 너무 아름다운 길이었다. 하느님이 철없는 내게 준 축복이었다.” ―책에는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일상적인 삶의 키워드가 많다.
“신(神)과 종교? 신은 알 수 없고, 믿음과 희망 속에 존재한다. 내가 생각하는 종교는 인간이라면 가야 할 길이다. 행복한 인간이 되기 위해 믿는 게 종교라는 의미다. 하느님을 위한 게 아니다. 하느님은 잘 살고 계시다. 우리가 해 드릴 게 없다.”
―김수환 추기경 곁에 오래 있었는데, 가장 기억나는 일은 무엇인가.
“추기경님은 무엇보다 솔직한 분이었다. 항상 주변의 기대와 존경이 많았는데 ‘나는 평범한 사람’이라며 힘들어하셨다. 그럼에도 그런 기대에 순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점에서 평범하지 않고 놀라웠다. 추기경님의 유머 감각에 조금 도움을 드렸다. ‘고 신부, 뭐 재미있는 얘기 없나’는 말에 아이디어를 드리면 눈이 안 보이도록 환하게 웃으시곤 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 매일 기사 쓰느라 힘들었다.
“명동 주임신부로 미사와 광화문 시복식을 준비하던 저는 죽었다(웃음). 힘들기보다는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신자들 많이 오지 않냐? 힘들어하지 말고 신자들의 고해성사를 정말 잘해야 한다’는 교황님 당부가 기억난다.”
―앞으로 계획은….
“엄연한 죽음이 내게 멀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초읽기에 몰리기 전에 잘 준비해야 한다. 영적으로 깊어져 하느님을 체험하고 신자들을 사랑하며 살고 싶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힘겨운 이들을 위한 조언을 들려 달라.
“도쿄의 신자들에게 지금은 ‘코로나 박해이면서 코로나 피정 시기’라고 했다. 힘들다고 주저앉을 게 아니라 이웃을 돕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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