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빠삐용’(1973년)에서 죄수들은 나비를 잡는다. 나비의 날개는 갇힌 그들의 처지와 대비되고 자유를 갈망하는 주인공은 자신을 나비에 빗댄다. 당나라 낙빈왕(駱賓王·638?∼685?)은 죄수가 된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매미에 빗대 노래한 바 있다.
678년 낙빈왕은 상소문이 측천무후의 역린을 건드려 수뢰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혔다. 시는 매미 소리를 듣는 옥중의 시인으로부터 출발해 매미와 시인이 병렬되다 차츰 하나가 돼 세상으로부터 결백함을 인정받지 못하는 통한을 드러낸다. 시인의 내심이 매미를 통해 토로된다. ‘흰머리의 읊조림’이란 표현은 허송세월에 대한 한탄이자 한대 탁문군(卓文君)이 지었다고 전하는 ‘백두음(白頭吟)’을 가리키는데, 시인은 버림받은 여인의 억울함을 통해 권력자에게 외면받은 자신의 충심을 암시한다.
한시사에서 매미는 시끄러운 울음소리로 혼란한 시대상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이슬만 먹고 허물을 벗고 날아가는 특성으로 인해 세속을 벗어난 고결함의 상징이 됐다. 특히 그 고결함으로 인해 학대받는 약자라는 점이 강조되곤 했다(曹植의 ‘蟬賦’). 시인은 서문에서 매미의 얇은 ‘날개’에 주목한다. 그리고 친구에게 그 연약한 날개가 바람에 나부낌을 불쌍히 여겨주길 부탁한다. 시에서도 매미 날개를 본떠 만든 검은 머리장식(玄빈·현빈)을 언급하며 현실의 문제로 인해 날아가기 어려움을 호소한다.
앨런 파커 감독의 영화 ‘버디’(1984년)에서도 이 날개가 중요한 이미지로 활용된다. 새를 너무도 사랑하는 주인공 버디는 새가 돼 타락한 인간세계에서 벗어나길 꿈꾼다. 그는 새와 가까워지기 위해 깃털을 모아 옷을 만들어 입고 새처럼 날기 위해 날갯짓을 연습한다. 그러던 그가 베트남전에서 얻은 정신적 상처로 병실에 갇혀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게 된다. 그는 창살 밖 자유를 꿈꾸며 새와 하나가 되어 날아가는 상상을 한다.
동아시아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탄식하는 테마는 굴원의 ‘이소(離騷)’로부터 비롯하였다. 사기에선 굴원의 삶을 ‘선세(蟬(세,태))’라고 표현한 바 있다. 세속의 더러움을 매미 허물처럼 벗어던졌다는 의미다. 매미는 허물을 벗고 우화(羽化)했을 때 비로소 날개가 생긴다. 한시도 영화도 날개를 선망하고 날갯짓에 주목한다. 우리 역시 현실 속 질곡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아니 날아오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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