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아이언맨과 햄릿 형제처럼 닮았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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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레시피/홍지운 지음/548쪽·2만3000원·요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에서 공개됐거나 현재 제작 중인 영상작품의 원작 장르소설들이 연달아 번역, 출간되고 있다. 이달만 해도 공상과학(SF) 장편소설 ‘버드 박스’(검은숲), 스릴러 중편소설집 ‘피가 흐르는 곳에’(황금가지) 같은 굵직한 원작 장르소설이 국내에 출간됐다. 원작을 다양한 형태로 변주하는 지식재산권(IP) 시장이 커지면서 벌어진 흐름. 그 덕에 영상화에 적합한 장르소설의 강세는 더욱 커질 것 같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장르물에 대한 이론적 토대가 부족하다. 이와 관련해 현직 SF 작가이자 대학에서 웹소설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가 쓴 장르물 이론서가 최근 눈에 들어왔다. 저자는 이론적 토대에 자신의 창작 경험을 녹여 슈퍼히어로 로맨스 좀비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분석했다. 만화 영화 소설에 걸쳐 인기 작품을 예로 들며 글을 썼기에 창작자는 물론이고 독자나 시청자도 읽을 만하다. 이론을 알면 장르소설이나 영화를 더 재밌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슈퍼히어로물부터 보자. 저자에 따르면 마블스튜디오가 제작하는 영화와 드라마가 속한 세계관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는 얄미울 정도로 비슷한 서사를 반복한다. 대부분 주인공의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주인공은 이를 복수하기 위해 악당과 싸우는 이야기다. 예를 들면 ‘아이언맨’에서 아버지 하워드 스타크는 살해당한다. 악당이 하워드 스타크가 만든 기술을 독점하기 위해 죽인 것. 주인공 토니 스타크는 악당과 싸우며 기술을 지켜낸다.

누군가는 이를 판에 박은 듯한 ‘클리셰’라고 비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슈퍼히어로물에 매료되는 건 이유가 있다. 저자는 슈퍼히어로물 서사의 원형을 영국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에서 찾는다. 덴마크 왕자 햄릿(주인공)이 유령이 된 선왕(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삼촌(악당)과 싸우는 이야기 구조를 가져왔다는 것. 이외에도 여러 장르물이 스테디셀러의 비결을 추구한다. 재해, 공포, 탈출이라는 구조를 따르는 좀비물은 성경의 ‘노아의 방주’ 이야기와 닮았다. 위기에 처한 여성이 시련을 극복한 뒤 사랑하는 이를 만나는 로맨스물은 프랑스 동화 ‘신데렐라’의 서사를 따른다. “MCU 시리즈는 햄릿이 제시한 모델을 충실히 따른다. 햄릿이야말로 슈퍼히어로물의 초창기 시나리오”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물론 레시피로 만든 요리를 그대로 테이블에 내놓는 식당은 없다는 저자의 주장처럼 좋은 작품이 되려면 독창적인 소재나 변주가 필요하다. 좀비물을 조선시대로 끌고 간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처럼 장르의 틀은 유지하되 색다른 배경이나 설정으로 시청자를 사로잡는 법. MCU처럼 독자와 시청자를 사로잡을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국내 작가들도 더 많이 써주기를 기대한다.

#아이언맨#햄릿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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