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투병기와 달리 ‘공생법’ 담아
“독자들, 소통-공감 필자에 큰 호응”
‘ADHD 편견으로 치료시기 놓쳤다’
질병에 대한 새로운 해석 나오기도
“지금의 나는 베테랑이다. 처음에는 물을 마시지 않고 자연스레 올라오는 것을 게워낸다. 왼 손가락을 목구멍에 집어넣기는 하지만 구토가 가능한 위장의 상태를 느낌으로 알고 있다. 그 상태로 위장을 준비시키고, 곧바로 토해낸다.”
20년간 거식증을 겪어 온 박지니 씨는 23일 펴낸 에세이 ‘삼키기 연습’(글항아리)에 기나긴 투병 기간 동안 탐구했던 ‘질병과의 공생법’을 풀어놓았다. 그에 따르면 거식증 환자 중 절반은 완치되지만 30%는 부분적으로만 회복되고 20%는 고질적인 환자로 남는다. 30%에 속하는 저자는 “그것(거식증)은 병이지만 내 존재 방식이기도 했다. 그것을 버리고도 살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질 않는다”고 고백한다.
정신질환 투병기를 고백한 에세이들이 줄줄이 출간되고 있다. 그동안 정신질환을 주제로 한 책들은 많았지만 대부분 전문가의 시각에서 정보를 전달하거나 해당 질병을 완치한 이들의 극복기가 주를 이뤘다. 최근 서점가에 쏟아지는 책들은 여전히 질병을 앓고 있는 저자들이 쓴 경우가 많은 데다 질병을 극복이 아닌 공생의 대상으로 다룬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요즘 독자들은 가르치는 필자보다 소통, 공감하는 필자에게 더 큰 호응을 보낸다. 일반인들의 직업 에세이가 인기를 끄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라고 분석했다.
개인적인 맥락에서의 정신질환 투병 경험을 담다 보니 질병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지난달 출간된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휴머니스트)는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에서 일하는 여성 임상심리학자인 신지수 씨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은 경험을 풀어놓은 에세이다. 신 씨는 수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검사를 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ADHD 환자라는 것을 오랫동안 깨닫지 못했던 이유를 젠더화된 질병 이미지에서 찾았다. 그는 책에서 “ADHD 환자가 흔히 ‘정신없는 남자아이’로 묘사되어 왔기 때문에 여아, 성인 여성은 진단에서 소외돼 치료 시기를 놓쳐 왔다”고 지적한다.
같은 질병을 다룬 ‘젊은 ADHD의 슬픔’(민음사)의 저자 정지음 씨는 10대부터 ADHD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질병에 대한 편견 탓에 26세에 이르러서야 ADHD 진단을 받게 된 경험을 털어놓으며 “10대의 내가 껌 대신 처방전을 뗐더라면 인생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회한이 남는다”고 썼다.
5월 출간된 ‘지하철이 무섭다고 퇴사할 순 없잖아’(가나)의 저자 김세경 씨는 공황장애 투병기를 정리했다. 공황장애는 ‘연예인병’, ‘나약하고 한가한 사람이 걸리는 병’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그는 대기업에 근무하며 5세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김 씨는 하루하루 바쁘고 치열하게 살던 중 퇴근길 지하철에서 공황 발작을 일으킨 경험을 시작으로 질병에 대한 편견을 벗기고 “공황장애를 돌볼 줄 아는 법을 터득하면 발병 전보다 불안과 스트레스를 더 잘 관리할 수 있게 된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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