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자본회계론’ 펴낸 전성호 교수
19세기 개성상인 회계장부 분석
당시 소유-경영 분리 운영도 밝혀
“고려 ‘복식부기’ 실증자료 없지만 각종 문헌서 사용정황-용어 확인”
1123년 북송의 외교사절로 고려에 온 서긍(1091∼1153)이 남긴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따르면, 서긍은 고려의 회계 단위를 보고 송 황제에게 “동문(同文·중국 문화권)의 중화(中華)를 이룬 곳이 바로 고려”라고 보고한다. 중국이 제일 우월하다는 중화사상을 가진 나라가 고려를 최고라며 극찬한 것. 고려의 회계 수준이 세계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난달 10일 출간된 ‘개성자본회계론’(현북스)은 11, 12세기 고려에 자본주의 문명이 존재했다고 설명한다. 유럽보다 200여 년 앞선 것으로, 자본주의의 핵심 의사소통 언어인 회계가 고려에 이미 발달해 있었다. 책을 쓴 전성호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59)는 31일 화상 인터뷰에서 “고려시대 금융제도와 회계제도를 결합한 방식을 ‘개성자본회계론’이라고 이름 지었다. 유럽의 15세기 회계혁명보다 2, 3세기 앞선 개성발 금융혁명이다”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13,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처음 사용됐다고 알려진 복식부기보다 앞선 11세기경 고려에서 같은 원리로 회계장부를 기입한 방식이 존재했다고 설명한다. 복식부기는 회계장부를 기록할 때 모든 거래를 좌측 차변(借邊)과 우측 대변(貸邊)에 각각 기입하는 방식으로, 거래 활동이 복잡하고 정확한 거래 업적을 산출해야 하는 기업에서 쓰인다.
고려에서 복식부기를 사용했다는 실증 자료는 없지만, 전 교수는 2013년 발굴된 19세기 후반 개성상인의 회계장부를 비롯한 각종 문헌에서 사실상 복식부기 형태로 기입을 한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복식부기 발달의 전제 조건도 찾았다. 전 교수는 “동국통보, 삼한통보 등 11세기에서 19세기까지 고려와 조선에서는 금속화폐 전(錢)과 그 단위로 액면가치인 문(文)을 사용했고 개성상인의 회계장부에서는 ‘문’을 중심으로 회계를 풀어냈다”며 “통화 단위와 회계 단위의 통합이라는 가장 중요한 조건을 충족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전제 조건인 국제 교역도 고려에서 활발히 이뤄졌다. 국제 무역을 할 때는 결제 수단으로 ‘환어음’을 사용하는데 환어음의 발행인, 수취인, 지급인과 채무 관계를 정확하게 기입하기 위해 복식부기가 발달했다. 1449년부터 2년간 편찬된 고려시대 역사서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11세기 강화도 북쪽의 항구 연미정(燕尾亭)에는 매일 무역선 1000척이 드나들었다. 1262년 관청 노비 지급 문서인 ‘상서도관첩(尙書都官貼)’은 19세기 개성상인 회계장부의 용어와 일치하는 회계용어가 쓰였다.
전 교수는 개성의 복식부기가 서구보다 우수하다고 설명한다. 그는 “재료들이 균형을 이뤄 짜맞춰지는 한옥의 건축 양식처럼 고려 상인이 작성한 회계는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의 차액이 일치했다”며 “상인들은 정확하게 작성된 회계장부를 공유했고, 이는 각자의 신용을 보증했다”고 말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도 개성에 존재했다. 한 인삼가게의 1898년 9월 소득계산서에 따르면 가게 소유주는 소득계산서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다가 이익배당자 명단에 등장한다. 기업 소유주가 경영을 전문가에게 맡기는 ‘전문경영인 제도’가 당시 개성에서 운영되고 있었던 것이다.
“개성자본회계론이 우수한 우리 회계를 소개해 유럽 중심의 회계 질서에서 벗어나 균형 있는 사고를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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