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이곳 천상계에서 인류사의 위대한 정신들과 담론하기가 즐겁기 그지없습니다. 내가 다스렸던 나라의 의사가 재미있는 책을 썼기에, 책에 언급된 분들을 이렇게 한자리에 초대했습니다.
▽가우디=영광스럽게도 대왕님과 제 이름이 같이 제목에 올랐군요. 저는 지상에서 관절염으로 고통을 받았었습니다. 어느 의사도 알아내지 못했는데 저자가 병명을 정확히 짚어냈군요. 여섯 살 때 생겼으니 퇴행성관절염은 아니고, 양쪽 발에 통증이 집중되었으니 ‘소아기 특발성 관절염’일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군요. 속이 시원합니다.
▽니체=논리 전문가인 철학자의 입장에서 읽어 보니 각 장의 체제가 매우 논리적이군요. 유명인을 괴롭힌 질환의 후보군을 넓게 추려본 뒤 정밀한 검토를 통해 하나씩 용의선상에서 배제하는 방식이에요. 제 경우 두통으로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했는데, 당시엔 신경매독이라는 진단을 받았죠. 신경매독 환자는 식욕이 떨어지는데 저는 폭식을 했으니 신경매독이 아니라고 저자가 설명하네요. 억울함이 풀렸습니다. 제 경우 뇌종양이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군요.
▽도스토옙스키=작가인 제 눈으로 볼 때 병 외에도 명사들의 내밀한 사연들을 풀어 나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닙니다. 부끄럽지만 제 경우 ‘세계적인 대문호가 도박꾼이 된 사연’을 키워드로 삼았어요. 두 번째 아내 스닛키나와의 인연도 흥미롭게 소개했고요. 제가 뇌전증(간질) 환자였던 건 알려져 있죠. 저자는 제 도박중독도 뇌전증과 연관시켜 설명했습니다. 저와 같은 뇌를 가진 사람은 흥분성 신경전달 물질이 많아 도박에 쉽게 빠진다고요. 본래 성격이 나빴던 건 아님을 밝혀준 거죠. 제가 소설 속에 묘사한 뇌전증 증세들도 세밀히 분석했어요. 덧붙이자면 저는 한국어를 잘 모르지만, ‘대문호는 끝까지 짜인 치약처럼 재산을 털렸다’(제 얘깁니다) ‘모차르트는 오롱이조롱이 뽑아낸 선율로 모두를 매혹했다’처럼 글맛을 잘 살린 점도 돋보였습니다. ‘무엇이 밥 말리를 말려 죽였는가?’ 같은 아재 개그도 놓치지 않았군요.
▽모차르트=저는 한창 재능이 피어나던 35세 때 더 명곡을 내놓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 게 한스러웠는데, 저자는 제 병명을 ‘연쇄구균 감염 후 사구체신염’으로 진단했어요. 당시 오스트리아 빈에 유행했던 병이라고 하는군요. 다른 예술가들을 들면 화가 로트레크를 난쟁이로 만든 유전병, 모네의 화풍을 변화시킨 백내장 등은 이미 어렴풋이 알려졌던 내용이지만 저자가 더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세종대왕=내가 운동을 못한 이유도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강직성 척추염 때문이었다는 점이 이 책으로 밝혀졌습니다. 내가 지금도 그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면 큰 벼슬을 내려 주었을 터인데…. 헤어지기 전에, 이 모임은 저자가 의도한 게 아니라 기자가 상상 속에서 마련한 자리일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겠습니다. 다들 추석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아차, 나라마다 풍속이 서르 사맛디 아니하니…. 어쨌든 푸른 가을 하늘과 보름달을 한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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