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아르 마지막으로 만난 날 그의 미소-터번까지 생생하죠”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27일 03시 00분


현대 페미니즘 모태 ‘제2의 성’
佛원전 첫 정식 출간 이정순 박사
“먼저 해제보고 읽는게 좋은 시작”

시몬 드 보부아르
시몬 드 보부아르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에 빠졌던 대학 시절 보부아르를 만났어요. 인간으로서의 자신뿐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제 존재를 더 정확히 들여다볼 수 있었죠.”

프랑스 파리4대학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의 철학 사상과 문학 작품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이정순 전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대표(65)가 현대 페미니즘 사상의 모태가 된 보부아르의 ‘제2의 성’(1949년·사진)을 10일 을유문화사에서 번역 출간했다. ‘제2의 성’은 국내에 여러 판본이 유통되고 있었지만 프랑스 원전을 정식 계약해 번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 번역과 주석, 해설에 3년간 공을 들였다는 이 전 대표를 최근 전화로 인터뷰했다.

“1980년 4월 파리에서 열린 장 폴 사르트르(1905∼1980)의 장례식에서 보부아르를 처음 봤어요. 박사 학위를 준비하던 1986년 3월에 정식으로 약속을 잡고 그를 두 번째로 만났죠. 당시 그의 미소와 그가 쓰고 있던 터번까지도 기억이 생생하답니다.”

보부아르의 철학 사상과 관련한 박사 논문을 준비하던 이 전 대표는 보부아르와 직접 대화하고 싶은 마음에 만남을 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진솔한 편지에 보부아르는 흔쾌히 시간을 내어 줬고, 한 시간 반 정도 대화한 뒤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건넸지만 그로부터 3주 뒤 세상을 떠났다.

‘제2의 성’은 실존주의 철학의 관점에서 원시사회부터 현대까지 여성의 상황을 예리하게 분석한 보부아르의 대표작. ‘우리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되는 것이다’라는 명제로 유명하다. 보부아르는 이 책에서 사회, 정치, 신화, 문학 등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는 남성의 여성 지배 및 남성이 여성에게 부여한 역할과 이미지를 총체적으로 분석했다.

책은 보부아르에게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주었지만 당시 가부장 사회에서 “남녀는 평등하다”는 주장은 강력한 반발을 불렀다. 이 전 대표는 “대중은 물론이고 지식인, 심지어 일부 여성들에게도 ‘말도 안 되는 책’이라는 비난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그 시절의 양상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며 “민주주의의 세례를 받고 자란 오늘날의 젊은 여성들은 성평등 인식이 깊은 데 반해 남성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힘은 여전히 공고해 성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1000쪽에 이르는 이 책을 단숨에 읽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 전 대표는 “2부에서 다루는 생애주기에 따른 여성의 체험들은 현대 여성의 상황과도 겹쳐져 쉽게 읽힐 거다. 해제를 먼저 읽은 뒤 책을 읽는 것도 좋은 시작”이라는 팁을 건넸다.

#시몬 드 보부아르#현대 페미니즘 모태#제2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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