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강원 철원군에서 주최한 군인요리대회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적이 있다. 전국 최초 지리적 표시제로 유명한 ‘철원 오대쌀’을 주제로 군부대 선발 군인들이 펼치는 대회였다. 대회장인 철원종합운동장에는 생전 처음 보는 실물 탱크가 한편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백골레스토랑’ ‘용호식당’ 등 군부대에 어울리는 팀명으로 출전한 군인들의 요리는 포상휴가를 비롯해 달콤한 상품들이 걸려 있어서인지 기대 이상으로 참신한 것들이 적지 않았다. 요리만큼이나 인상 깊었던 것은 치열한 응원전으로 대회장의 열기는 마치 웅장한 군인 올림픽을 연상시켰다.
한반도 내륙을 여행할 때 맑은 강만 보이면 근처 어느 집에선가 생선탕이 끓고 있을 것 같은데, 철원이 그런 곳 중 하나다. 북한 평강군에서부터 내려오고 있는, 철원을 가로지르는 한탄강 상류인 화강이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남대천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근처에서는 예로부터 냇물에서 고기를 잡으며 즐기는 천렵(川獵)이 성행했고, 집집마다 장맛이 다르니 같은 계절 엇비슷한 생선이라도 손맛이 다른 매운탕이 됐다.
철원군 갈말읍 ‘남대천황가네매운탕’은 상호에 모든 게 담겨 있다. 이름처럼 남대천의 민물생선인 메기, 빠가사리(동자개), 쏘가리, 잡고기 등을 재료로 한 황명욱 씨 집안의 매운탕을 맛볼 수 있다. 젊은 시절 사업가로 도시에서 활동했던 주인장은 귀향 뒤 외식업으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익숙하게 먹어온 매운탕 맛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터다. 인천 출신인 아내는 종갓집 맏며느리로 시집와서 자연스럽게 시어머니의 비법을 배우게 됐다. 그는 천렵으로 한번 모이면 스무 명이 훨씬 넘는 집안 식구들을 대접하면서 지금의 매운탕 전문점을 오랫동안 준비한 셈이다.
토종 대파 뿌리 말린 것에 다시마, 엄나무, 황기, 통계피, 북어 대가리, 양파 등을 오래 달여 베보자기에 거른 밑국물로 매운탕을 끓였다. 보기에는 여느 식당의 탕과 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 일단 국물 맛을 보면 그리 시원할 수가 없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지나친 재료와 화학조미료가 들어간 텁텁한 국물에 익숙한 손님들의 항의도 있었다. 하지만 점차 개운하고 깔끔한 황가네 국물 맛에 빠진 단골들이 늘어갔다.
식당을 하면서 꾸준히 농사도 짓기에 고춧가루, 파, 마늘 양념부터 그날그날 상에 오르는 채소들은 손수 재배한 것들이 많다. 봄에 피는 대파꽃으로 담근 장아찌, 냉이뿌리장아찌 등 수확할 때 나오는 재료로 만든 별미 밑반찬도 간혹 맛볼 수 있다. 밥은 철원 대마리 쌀로 짓는다. 서각에 조예가 깊은 주인장 덕에 식당 여기저기에서 물고기 모양 메뉴판이나 도마, 그릇 등 다양한 목공예품들을 구경하는 즐거움은 덤이다.
누군가와의 접촉이 성가신 시절이다. 한탄강 고석정의 협곡을 보며 옛날 임꺽정의 신출귀몰을 상상하러 단출한 나들이를 떠나볼 만한 가을이다. 이때 철원 매운탕은 식후경으로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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