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에 뛰노는 캐릭터들은 관람객들의 시선을 한순간에 사로잡는다. 미키마우스, 도라에몽, 호빵맨 등 일그러진 동서양의 대중문화 캐릭터가 영국 작가 조지 몰튼 클락의 캔버스에 모습을 비춘다. 김명진은 이름 모를 행성에서 행복하게 부유하는 빨간색 젤리맨, 살구색 소시지맨 등 6개의 캐릭터들을 탄생시켰다. 한상윤은 2009년부터 12년째 돼지 캐릭터를 그리며 시대상을 반영한다.
●낙서의 미학, 조지 몰튼 클락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조지 몰튼 클락(39)은 “손맛이 좋다”는 이유로 페인팅의 길을 걸었다. 그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추상화로 재해석한다. 정제되지 않은 선은 ‘낙서의 미학’으로 표현되곤 한다. 대략적인 스케치는 하지만, 순간의 느낌에 따라 캔버스에 옮겨온다. 전시 4개월을 앞두고는 2점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을 모두 폐기하고 새로 그렸다.
추상화가로 자신을 정의하는 작가는 “캐릭터는 추상화를 만들기 위한 일종의 그릇이다. 점차 캐릭터 형태를 더 추상화해 캐릭터 이면의 의미에 집중하실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작가가 3일간 한국에 머물며 작업한 설치작품 ‘The Favored Refugees’도 난민 문제를 은유한다. 회화 작품에서 움직이던 캐릭터들이 튜브를 타고 해변에서 놀고 있는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오브제들은 뒤엉키고 부서져 서로 섞여있다.
●캐릭터와 소통한다, 김명진
재기발랄한 캐릭터들, 그를 돋보이게 하는 산수화 같은 흑백 공간과 낙서 같은 배경작업은 작가의 이력을 대변한다. 김명진(43)은 1998년 대구예술대 동양화과를 다니다 자퇴했다. 그 후 15년의 공백 기간 동안 동화책 일러스트, 타투이스트, 페인트공으로 일했다. 2013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관 전시를 한 후 손을 떼려했으나 갤러리가이아와 인연이 돼 현재까지 활동 중이다. 차츰 우울증을 극복하며 전작에 비해 작품이 밝아지고 있기도 하다.
2달간 연구해 만들어낸 6개의 캐릭터는 실제 소시지나 젤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작가가 꿈속에서 만나 우유를 나눠준 어린 양도 캐릭터가 됐다. “캐릭터에 나를 투영하기보다는 나는 마냥 캐릭터가 반갑다”는 작가는 작업을 하며 관객의 시선이 아니라 작품 속으로 들어가 대화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작품에 공산품을 그려 넣은 것도 같은 이유다. 관객도 캐릭터에게 ‘그 신발 비싸지 않아?’ 식으로 물어봤으면 한다는 바람이다. 작가는 “어릴 때 말도 안 통하는 사물과 대화하면서 스케치북을 넘어 벽, 바닥에도 낙서하던 기억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한국적 팝아티스트 한상윤
일본에서 풍자화를 전공한 한상윤(36)은 현대인의 물질적 욕망을 비판하기 위해 돼지를 그렸지만, 지금은 “관객이 풍자로 인한 웃음이 아닌 행복한 웃음을 지으셨으면 한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 자크 루이 다비드의 ‘성 베르나르 협곡’을 오마주한 작품 3점도 볼 수 있다. 작품 속 돼지들은 코카콜라를 들고 있다. 해석을 해야 할 것 같은, 어려운 느낌을 주는 명화를 편하게 전환시키는 것이다.
행복한 그림이라지만 그는 여전히 작품에 현대 사회를 보는 작가의 시선을 담는다. 루이비통, 샤넬 등 명품을 들고 있는 돼지는 사치스러운 현대인들의 맵시를 떠올리게 한다. 그가 ‘팝 아티스트’라고 불리는 이유다. 작가는 “최근 만화 캐릭터를 쓰면 ‘팝아트’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팝아트라는 건 시대성을 담아야 한다. 절대 ‘쉬운 미술’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분채, 석채 등 한국적 재료로, 한국 돼지를 통해 한국 사회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한국적 팝아트’를 만들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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