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에 앞서 세계적 열풍을 일으킨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종이의 집’ 시즌3에는 이목을 끄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스페인 중앙은행에 침입한 강도 일당을 소탕하는 작전을 지휘하는 시에라 경감이다. 그는 만삭의 임신부다. 비록 드라마지만 만삭인 여성이 중대 사건 대응을 총괄하는 장면은 시대의 변화를 보여줬다.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의 첫 여성 테뉴어(정년 보장) 교수인 저자 클라우디아 골딘은 임신과 육아 때문에 여성이 일 자체를 포기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저자는 미국 대졸 여성들을 태어난 시기별로 5개 그룹으로 나눈다. 그룹1은 1878∼1897년에 태어난 이들. 이 중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진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1958∼1978년에 태어난 그룹5는 일과 가정의 양립을 일군 여성들이 다수다.
저자는 이 ‘양립’의 이면은 여전히 어둡다고 지적한다. 여성들 상당수는 임신하거나 아이를 낳은 뒤 같은 직장에서도 승진에서 남성 동료에게 밀리고 있다고 느낀다. 부부 중 아이에게 비상 상황이 생겼을 때 사무실을 뛰쳐나올 수 있는 ‘온콜(on-call·비상대기)’ 임무를 맡는 건 대체로 여성이다. 그러려면 직장 내 업무 중에서도 근무시간에 유연성이 허용되는 비핵심 업무를 택할 수밖에 없다. 대개 이런 업무는 소득이 적다. 성별 소득격차가 벌어지는 이유다.
워킹맘이나 임신부가 더 강도 높은 업무를 하겠다고 요구해도 조직이 모성보호를 내세워 이를 수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시에라 경감과 같은 사례가 현실세계에선 소수에 그치는 이유다. 게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학교와 어린이집이 셧다운된 지난해 워킹맘들은 일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다 뒤통수를 맞는 상황에 봉착했다.
저자는 “사회적 차원에서 아동 돌봄 서비스를 더 많이 제공해야 한다”거나 노동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식의 다소 뻔한 해법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돼온 저자가 짚어본 여성들의 성평등을 향한 100여 년의 여정과 성별 소득격차의 원인을 밝히는 과정을 따라가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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