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대학 문예창작학과에서 소설 창작 수업을 듣던 때였다. 종강이 다가오자 담당교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공지했다. 한 학기 내내 쓰고 토론하고 퇴고한 작품으로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응모하라는 것. 자신의 습작이 형편없다고 생각되더라도 ‘도전’에 의미를 두라는 뜻이었다. 수업에서 연거푸 교수 지적을 받고 다른 학생의 날카로운 비평에 좌절했던 학생들은 이 말을 듣고 용기를 냈다. 작품의 오탈자를 고치고 프린트한 뒤 황색봉투에 ‘신춘문예 응모작품’이라고 써서 신문사에 보냈다. 혹시 우체국 등기가 제대로 도착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수강생들의 모습이 기억난다.
이 책은 2021년 전국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들을 모은 작품집이다. 대부분 주최한 신문사들의 홈페이지에 공개된 작품들이지만 한 책으로 모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맘때면 ‘문청’들이 이 책에 담긴 전년도 당선작들을 분석하며 올해 어떤 작품을 쓸지 고민한다. 신인 작가들의 뼈를 깎는 노력의 결정체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문학 팬들의 시선도 끈다.
책을 읽으며 느낀 건 당선작들에서 하나의 경향성을 쉬이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응모자 입장에선 전년도 당선작을 분석해야 입상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믿지만, 신춘문예마다 심사위원이 다르니 경향성을 찾는 건 불가능한 노력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당선작은 하나씩 강점을 지니고 있었다. 어떤 소설은 건조한 문체로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묻고, 다른 소설은 탄탄한 문장력으로 첫 문단부터 독자를 빨아들인다. 치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완성도 높은 서사를 갖춘 작품도 있고, 작가의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따라가는 작품도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수상작들에서 완성된 작가는 아니더라도 가능성을 품은 작가 지망생의 모습을 봤을 것이다.
당선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며 눈길이 간 건 그들의 연배가 생각보다 높다는 거였다. 202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밸런스 게임’으로 당선된 이소정 씨(43)를 비롯해 오랫동안 꾸준히 글을 써온 작가들이 꽤 있었다. 이 책을 묶어낸 한국소설가협회의 김호운 이사장이 “오랜 시간 인고의 노력으로 문학을 갈고닦아 소설가로 입문했기에 그 영광이 더욱 빛난다”고 당선자들을 격려한 이유가 이해된다.
11월에 들어서니 신문사들이 속속 신춘문예 공고를 내고 있다. 1925년 국내 최초로 신춘문예를 도입한 동아일보사 역시 2022년 신춘문예 작품을 12월 1일(수)까지 공모한다. 혹 문청들이 자신의 작품이 떨어질까 우려해 응모 자체를 포기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신춘문예에 응모하고 난 뒤 우체국에서 등기 영수증을 받는 ‘도전’만으로도 조금 더 문학적인 삶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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