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쓰신 소설 ‘토지’를 더 많은 분들이 접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디오북으로 만들면 어떨까요?”
지난해 말 고(故) 박경리 선생의 외손자인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은 남무현 마로니에북스 마케팅팀 부장에게 특별한 제안을 했다. 김 이사장은 토지의 저작권자이고, 마로니에북스는 2012년 토지의 마지막 개정판을 펴낸 출판사. 1년간 제작된 토지 오디오북은 지난달 29일 공개 당일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 윌라에서 종합 1위를 차지했다. 김 이사장은 “교과서를 통해서만 토지를 알고 있는 젊은 독자들에게 토지를 쉽게 소개하고 싶었다”며 “방대한 분량의 책을 독자들이 좀 더 부담 없이 만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토지는 박경리 선생이 1969~1994년에 걸쳐 장기 연재한 대하소설이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지주 계층이던 최 씨 일가의 몰락 등 가족사를 그린 한국 문학계 수작. 마로니에북스에서 출간된 토지 20권 세트는 총 9408쪽에 달할 정도로 분량이 방대하다. 이 때문에 드라마로 각색하거나 청소년용 도서, 만화로 펴낼 때는 원작의 분량을 줄였다. 토지의 명성에 비해 원본이 대중에게 온전히 전달된 경우는 적었던 것.
이번 토지 오디오북은 마로니에북스 판본을 그대로 담았다. 권당 러닝타임은 12시간. 현재 4권까지 나왔는데 내년까지 20권 분량이 모두 공개되면 총 러닝타임은 240시간에 이르게 된다. 지난해 12월 미국 장편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열린책들)의 오디오북이 세운 국내 오디오북 최장 러닝타임 66시간을 뛰어넘는 것이다.
만만치 않은 분량임에도 토지 오디오북은 공개 직후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윌라에서 공개 후 10일간 재생횟수는 27만 회다. 소설 토지에 친숙한 기존 장년 독자층이 오디오북으로 다시 듣는 경우도 있지만, 오디오북 핵심 소비자인 20, 30대의 호응도 높다. 이화진 윌라 콘텐츠팀 부장은 “이렇게 긴 분량의 대하소설이 짧은 기간에 1위에 오른 건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남무현 부장은 “토지를 읽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방대한 분량 탓에 그러지 못한 젊은 독자들이 오디오 방식으로라도 대작을 읽으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고 해석했다.
토지 오디오북에는 총 16명의 성우가 투입돼 원작의 사투리를 맛깔 나게 표현하고 있다. 최서희 역을 연기한 이명호 성우는 “사투리 대사의 맛을 전달하기 위해 실감나는 연기에 초점을 맞춰 녹음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치수 역을 맡은 김상백 성우는 “토지의 등장인물이 총 600여 명에 달하는 만큼 4권까지 혼자서 학생, 하인 등 10명의 인물 역을 맡았다. 앞으로 더 많은 인물을 연기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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