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an‘s Gone Now’를 (재즈 가수) 엘라 피츠제럴드가 부르면 ‘내 남자가 잠깐 빵을 사러 나갔다’로 들리지만, 빌리가 부르면 ‘내 남자가 짐을 싸서 영영 떠나버렸다’로 들리죠.”(2019년 다큐멘터리 영화 ‘빌리’ 중)
전설적 재즈 보컬 빌리 홀리데이(1915∼1959)는 쓰디쓴 커피만큼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격동의 삶을 살다 갔다. 10세 때 성폭행을 당한 뒤 성매매 여성으로 살았으며 남편과 연인의 학대와 착취, 약물중독에 평생 시달렸다. 고난의 심연에서 뽑아낸 듯 ‘I’m a Fool to Want You’ ‘Don‘t Explain’ ‘God Bless the Child’ 등 명연을 숱하게 남겼다.
4일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빌리 홀리데이’는 그런 그의 삶을 새로 채색한 작품이다. 전기 영화이되 픽션이다. 홀리데이 역을 맡은 R&B·솔 가수 앤드라 데이(37)가 놀라운 열연과 열창으로 독특한 캐릭터를 체화해냈다. 배우 데뷔작임이 믿기지 않는다. 데이의 음성은 홀리데이에 비해 두께가 얇지만 그 기교는 물론이고 나른하며 비통한 표정까지 모사한 열창 장면들이 모조리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특히 명곡 ‘Strange Fruit’을 부르는 데이의 클로즈업 장면이 압권이다. 인종주의자들의 린치로 나무에 목매달려 죽은 흑인들의 모습을 이상한 과일로 비유한 곡. 영화의 원제는 ‘The United States vs. Billie Holiday’, 즉 ‘합중국 대 홀리데이’다. 개인의 비극적 삶을 넘어 인종차별에 맞선 투사로 홀리데이를 조명한 영화의 의도에 데이의 열연이 호응한다.
그간 홀리데이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많았다. 2019년 작 ‘빌리’도 그중 하나. 그러나 극영화인 ‘빌리 홀리데이’가 나온 건 1972년 ‘레이디 싱스 더 블루스’ 이후 49년 만이다. 당시 주연은 당대의 팝스타 다이애나 로스였다. ‘레이디…’는 인종차별과 마약 문제를 다루면서도 개인사에 초점을 맞췄다. 극 분위기가 밝고 로맨스의 비중이 높았고 로스의 연기도 시종 밝은 편이었다. 그룹 ‘슈프림스’ 출신의 로스는 흠잡을 데 없는 가창을 들려줬지만 홀리데이의 무게감을 재현한 깊이의 측면에서는 데이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로스와 데이는 각각 홀리데이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골든글로브에서 로스는 신인여우상, 데이는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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