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100년 전쟁/라시드 할리디 지음·유강은 옮김/448쪽·2만5000원·열린책들
최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에 3000가구 이상의 새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밀어붙여 양측 사이의 긴장이 높아졌다. 언제 평화가 찾아올 것인가.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야 할까.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인 저자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의 성격을 ‘식민주의’로 규정한다. 유럽인이 아메리카 원주민을 몰아내고 땅을 차지한 것처럼, 이스라엘이 건국된 과정 역시 식민주의와 다름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영국이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의 민족적 권리를 약속한 1917년 밸푸어 선언부터 한 세기의 역사를 여섯 개의 장으로 정리한다. 그의 서술은 ‘유대 식민주의’와 나란히 ‘서사의 중요성’에 방점이 찍힌다. 팔레스타인은 자기 민족의 처지를 밝히고 호소하는 이야기에서 이스라엘에 패배해 왔다는 시각이다.
이스라엘 국가를 회복하자는 시온주의 주창자들은 ‘수천 년 동안 핍박받은 끝에 고향에 돌아가려는 민족’이라는 서사를 강조했고, 이는 개신교 영향력이 강한 미국과 영국 지배층을 매혹시켰다. ‘팔레스타인 민족이란 없었으며, 이 지역에는 낙후된 유목민만이 거주했다’는 서사도 만들어졌다.
팔레스타인의 저항이 본격화된 뒤엔 ‘이스라엘은 평화를 바라지만 상대방은 폭력을 야기하는 테러세력’이라는 서사가 더해졌다.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평론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표현을 빌리면 ‘관념과 이미지가 문제되는 국제사회’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한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절망을 말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식민주의는 역사에서 너무 ‘늦게’ 찾아왔기 때문이다. 탈식민 시대에 식민 현실을 강요할수록 서구 민주주의의 이상과 모순에 빠지며, 팔레스타인을 탄압할수록 비난과 고립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세계 여론에 호소하면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미국 내에선 풀뿌리 정치활동과 비공식 활동들을 통해 현실을 호소하고, 이스라엘 안에서도 팔레스타인을 향한 폭력과 억압 이외 다른 방안이 존재한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역설한다.
내부에 대한 질타와 자성도 빼놓지 않는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와 하마스 등 지도부가 국제 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해 내부 분열과 무모한 저항으로 일관해왔다고 질타한다. 팔레스타인을 조종하고 대리인으로 삼으려 했던 아랍 독재자들에 대한 비판도 이어진다.
저자의 가계와 개인적 체험은 이 책의 흥미와 신뢰도를 높여준다. 그의 종고조부(고조부의 형제)와 큰아버지는 각각 19세기 말과 1930년대에 예루살렘 시장을 지내며 시온주의와 대결했다. 그의 아버지는 유엔에서 일하며 아랍권과 이스라엘이 충돌할 때마다 안보리 회의 실무를 담당했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그는 “1960년대 아버지를 따라 3년간 서울에서 지냈다. 일본 식민지배와 한국인의 저항에 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고 밝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