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생 고(故) 황광수와 1976년생 정여울. 32년의 나이 차를 뛰어넘은 두 저자의 우정은 문학에 대한 사랑이라는 탄탄한 끈으로 이어져 있었다.
올 9월 29일 암 투병 끝에 별세한 황광수는 끝내 자신의 마지막 책을 보지 못했다. 그가 생전에 남긴 글들은 나이와 성별을 뛰어넘은 두 작가의 우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책은 서로에게 스승이자 벗이던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와 인터뷰 글, 황광수의 에세이를 추려 엮었다. 황광수는 20년가량 출판사에 몸담으며 문학평론가로 활동했다. ‘끝까지 쓰는 용기’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등을 쓴 정여울은 “선생님이자 친구와 나눈 이야기들을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안타까웠다”고 말한다.
당초 함께 책을 펴내기로 했지만 황광수의 별세로 기획 방향이 조금 달라졌다.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는 씁쓸함과 애도를 담은 정여울의 추도사가 추가됐다.
책은 심심한 대낮에 전화로 주고받았을 법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죽음, 역사, 인간, 민주주의에 대해 나눈 대화까지 온갖 주제를 다룬다.
정여울이 “선생님, 혹시 100년 전에 한국 사람이 미국에 가려면 어떻게 갔을까요?”라고 묻는가 하면 황광수는 “우주인처럼 무겁고 느리게 뒷동산을 걸어볼 참”이라며 일상을 담담히 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핵심은 문장에 대한 이들의 깊은 사랑이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문장은 곱씹을수록 의미심장하다.
투병 중이던 황광수가 “요즘엔 세상 모든 피조물이 슬프게 보일 때가 많다”고 털어놓자 정여울은 “꿈속에서 제가 선생님에게 빌린 건 인생에서 가장 눈부신 삶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황광수의 장례식에 다녀온 후 정여울은 “그곳은 많이 춥지 않으시냐”는 안부로 시작해 “이별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다짐으로 끝나는 ‘마지막 편지’를 쓴다. 이별했지만 이별하지 않은 이들의 우정은 그래서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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