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사랑하는 극작가 배삼식
창작가무극 ‘이른 봄 늦은 겨울’
서울 달오름극장서 24일까지
“순수한 아름다움 말하고 싶었죠”
“저 하나쯤은 무의미한 아름다움을 얘기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때론 의미 없는 것들이 우릴 구원하니까요.”
꽃을 사랑하는 극작가 배삼식(51·사진)이 창작가무극 ‘이른 봄 늦은 겨울’로 돌아왔다. 12일 개막해 24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하는 작품은 서울예술단이 6년 만에 재공연하는 작품. 우리 인생을 매화의 아름다움에 빗대 흘러가듯 유려하게 펼쳐낸 옴니버스 극이다.
9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 자택 인근에서 만난 배 작가는 “작품이 6년 만에 다시 빛을 볼 줄은 몰랐다”며 “배우들이 그저 무대에서 즐겁게 뛰놀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이어 “요즘엔 모두가 작품 안에 강한 메시지를 담기 위해 한쪽으로 쏠리는 것 같다. 순수한 아름다움을 그리는 극이 하나쯤은 있어도 될 것 같다”며 웃었다.
약 30년 전 그가 매화를 마주했던 찰나의 순간이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아 작품으로 이어졌다. 대학생 시절 배 작가가 한국식 정원으로 유명한 전남 담양군 소쇄원 인근을 여행할 때였다. 잔설 위 부슬비가 내리던 대숲 사이 푸르게 꽃받침이 올라온 청매화를 봤다. 그는 “겨우내 움츠렸다가 봄까지 견뎌낸 싹을 보고 덧없는 아름다움, 희망, 안타까움을 느꼈다. 정말 아름다운 것들은 늘 빨리 지나가 버리더라. 글로 그 아름다움을 조금이나마 붙잡아 두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작품의 미덕은 ‘느슨함’이다. 배우들은 느린 박자를 타고 천천히, 유려하게 움직이며 꽃이 됐다가 풍경이 되기도 한다. 인생의 찬란한 순간순간과 희로애락을 그려낸다. 배 작가는 “매화라는 소재 하나만 딱 붙잡고 작품을 느슨하게 써 나갔다. 작가가 할 말이 너무 많으면 춤, 연기는 들러리가 되기 쉽다. 극에 빈자리를 남기려 계속 비워냈다”고 했다.
지난해에도 그는 꽃을 노래했다. 국립극단의 70주년 기념작 ‘화전가’에서는 6·25전쟁을 앞둔 경북 안동의 산골에서 꽃놀이를 하며 노래를 부르던 여인들의 삶을 묘사했다. “고통스러운 전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면 너무 뻔할 것 같았다”고 했다. 집 마당에 여러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보며, 생명의 아름다움과 덧없음을 지켜봤다.
2007년 동아연극상 희곡상(‘열하일기만보’)에 이어 2009년에도 동아연극상 희곡상(‘하얀앵두’)을 수상한 그는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극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제가 쓴 대사 없이 무용수가 그저 고요히 무대를 지나는 장면이 가장 좋다”며 “저는 평생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걸 말하기 위해 말이라는 도구를 쓰는 사람일 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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