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음악 앞에 편할 자유… 행복 전해지면 나도 행복”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17일 03시 00분


‘맨발의 피아니스트’ 오트, 왼손 근육장애 딛고 19일 KBS교향악단과 협연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 연주
“마치 ‘오징어게임’ 같은 야만의 시대 묘사”
2년만에 새 앨범 ‘삶의 메아리’도 선보여

알리스 사라 오트는 2006, 2014년 한국에서 콘서트를 가졌다. 그는 “당시 젊고 열정적인 청중이 큰 에너지를 주었다. 나는 청중의 분위기에 잘 반응하는 편이어서 특히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KBS교향악단 제공
알리스 사라 오트는 2006, 2014년 한국에서 콘서트를 가졌다. 그는 “당시 젊고 열정적인 청중이 큰 에너지를 주었다. 나는 청중의 분위기에 잘 반응하는 편이어서 특히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KBS교향악단 제공
피아니스트 알리스 사라 오트(32). 일본인 어머니를 둔 독일인인 그는 음반사 도이체 그라모폰(DG)에서 앨범을 내놓으며 세계 최고의 악단들과 협연해 왔다. 2019년 1월, 그는 왼손이 근육의 통제력을 잃는 ‘다발성 경화증’에 걸렸다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밝혔다. 그리고 2년. 오트는 새 앨범 ‘삶의 메아리(Echos of life)’에 완벽한 연주를 선보이며 돌아왔다. 그가 1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을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지휘 KBS교향악단과 협연한다. 그를 KBS교향악단 대기실에서 16일 만났다.

―이번에 연주할 라벨의 협주곡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른손을 잃은 피아니스트를 위해 작곡된 곡입니다. 고난을 극복하는 메시지를 담고자 했는지요.


“이 협주곡은 시종일관 어둡고 시니컬합니다. 피아노가 유희적인 선율을 연주하고 불협화음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마치 ‘오징어 게임’에서 연상되는 분위기와 같습니다. 겉보기에 순진무구하지만 실제는 야만을 묘사하죠. 이런 분위기가 이 시대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안한 극단의 시대죠. 라벨의 협주곡 중 한층 ‘즐거운’ G장조 협주곡은 자주 연주해 왔습니다만, 이 곡은 이번이 불과 두 번째입니다.”

―이번에 피아니스트 출신 지휘자 에셴바흐와 협연하는데….(에셴바흐 지휘 KBS교향악단은 후반부에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을 연주한다.)

“피아니스트로서, 한 사람의 음악가로서 꼭 함께해보고 싶은 분이었습니다. 설레고 있어요!”

―올해 앨범 ‘삶의 메아리’에 쇼팽의 전주곡집 사이사이 현대 작품들을 넣었습니다. (오트 자신이 모차르트 ‘눈물의 날’을 편곡한 ‘영원에의 자장가’도 들어있다) ‘삶의 메아리’란 무슨 뜻인가요.


“삶은 예측 불가이고 늘 새로운 일에 직면합니다. 쇼팽의 전주곡집에 들어있는 24곡과 중간의 현대곡들은 각각 개성이 강하지만 서로 다음 것과 연결됩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경험하는 것들과 비슷합니다.”

―쇼팽 전주곡 20번 C단조에 특히 중요한 의미를 두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2년 전, 다른 C단조 곡을 치던 중 왼팔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몇 초 동안 광대한 주변의 공간이 정지하는 느낌이었습니다. C단조 곡을 칠 때마다 그 일이 떠오릅니다. 다행히 훌륭한 의사를 만나 좋은 치료를 받았고, 병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습니다.”

―‘맨발의 피아니스트’로 알려졌고, 연주 중의 미소가 푸근하다는 평도 있습니다.

“10여 년 전, 옛 피아노로 연주할 기회가 있었는데 피아노가 낮아 신고 있던 하이힐을 벗었죠. 편하더군요. 그 뒤로 신발을 신지 않고 연주하게 되었어요. 누구나 음악 앞에서 편할 자유가 있습니다. (웃음) 거울을 놓고 연주하지 않아서 제 표정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음악이 주는 행복이 관객에게 전해진다면 저도 행복한 일이죠.”

―일러스트레이터 겸 디자이너로도 알려졌는데….

“독일 요스트(Jost)사의 여행용 백을 디자인합니다. 여행이 많은 연주가의 경험을 반영하죠. 여러 사람에게 편함을 안겨 드리는 일이어서 즐겁습니다.”

한국 청중들을 위해 그림을 그려 달라고 하자 그는 순식간에 피아노 앞에 선 여성을 그리고 “한국의 여러분, 한국에 온 것이 즐겁습니다. 곧 봬요”라고 영어로 적었다. 피아노 앞의 여성은 곧은 머릿결에 맨발인 그 자신이었다.

#맨발의 피아니스트#알리스 사라 오트#kbs교향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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