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국제 미술계에는 새로운 기록이 쓰여졌습니다. 멕시코 출신 화가 프리다 칼로의 작품이 남미 작가 작품 중 경매 최고가를 세웠는데요. 소더비 뉴욕 경매에서 3490만 달러(약 412억 원)에 낙찰된 작품은 바로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 ‘디에고와 나’입니다.
재밌게도 칼로의 작품 이전까지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던 남미 작가는 그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입니다. 리베라가 록펠러 가문의 의뢰로 그린 ‘경쟁자들’이 그 주인공으로, 2018년 976만 달러(약 115억 원)에 낙찰됐습니다. 프리다의 그림 속에도 이 디에고의 얼굴이 등장하는데,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죠. 프리다는 남편 디에고를 왜 이렇게 그렸던 걸까요?
○ 이마에 그려진 애증의 얼굴
정면을 응시하는 칼로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웠습니다. 머리카락은 마치 목을 조르듯 헝클어져 얽혀 있고요.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아무래도 칼로의 짙은 눈썹 위 이마에 그려진 디에고 리베라의 얼굴입니다. 마치 나를 눈물짓게 하지만, 뇌리에 깊이 박혀 떨쳐낼 수 없다는 듯한 묘사네요. 프리다와 디에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 그림을 그리기 10년 전인 1939년. 프리다와 디에고는 10년간의 결혼 생활 끝에 이혼한 상태였습니다. 결혼 당시 이미 유명한 화가였던 디에고가 미술학교 학생이었던 프리다의 재능을 알아보며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두 번의 결혼을 했던 디에고는 프리다와 결혼 후에도 그녀에게 충실하지 않았습니다. 디에고가 유명 배우는 물론 프리다의 여동생 크리스티나와도 관계를 맺으면서 결혼 생활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달했습니다. 프리다 또한 다른 남자를 만나며 관계는 파국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 모든 일을 겪고 난 뒤 ‘디에고와 나’가 그려집니다. 애정 관계로만 비추어 본다면 프리다의 눈물과 머리카락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것도 같은데요. 그런데 이렇게 서로를 등진 사이를 왜 굳이 그렸을까, 그것도 이마 위에 아주 잘 보이게 묘사한 이유는 뭘까. 궁금증이 더해집니다.
○ “코끼리와 비둘기의 만남”
두 사람이 결혼할 때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 그림은 결혼 직후 프리다가 자신과 남편을 그린 것입니다. 팔레트와 붓을 한 손에 쥐고 있는 거대한 디에고 리베라의 모습이 인상적이죠. 한 손에는 디에고의 손을, 다른 손에는 숄을 붙잡고 디에고 쪽으로 고개를 기울인 프리다는 ‘큰 작가’를 믿고 의지하는 모습입니다. 그림을 보면 이 때까지만 해도 디에고는 프리다에게 거대한 존재였던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파티에서 디에고를 알게 된 22살의 프리다는 그에게 자신의 그림이 화가로서 재능이 있는지 봐 달라고 부탁합니다. 디에고는 후에 프리다의 그림에 대해 “표현에 독특한 에너지가 있었고, 캐릭터가 정확했으며, 혹독할 정도로 솔직했다”며 “그녀가 진정한 예술가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고 회고합니다.
이렇게 예술로 통하게 된 두 사람은 1929년 결혼합니다. 프리다의 엄마는 나이가 20살이나 많은 디에고와의 결혼을 반대했습니다. 프리다의 가족들은 체구 차이도 엄청난 두 사람에 대해 “코끼리와 비둘기의 만남”이라고 말했다네요. 그러나 아버지는 신체적 제한으로 일도 할 수 없고 비싼 치료를 받아야 하는 프리다가 유명 화가인 디에고를 만난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결혼 후 프리다는 디에고를 따라 멕시코는 물론 미국으로도 다니며 넓은 세상을 보게 됩니다. 프리다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것을 편견 없이 받아들였던 디에고가 결과적으로 화가로서 그녀의 성장에도 기여했음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프리다는 미국에서 유창한 영어와 재치로 주목을 받게 되는데요. 벽화 의뢰를 받은 디에고를 따라 디트로이트를 방문했을 때, 프리다는 지역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디에고도 그림을 잘 그리지만, 진짜 큰 화가는 바로 나에요.”
○ 엇갈린 시선 사이, 디에고와 나
코끼리처럼 큰 사람이었지만, 어느 순간 미워졌고 그럼에도 무시할 수 없는, 세계를 함께 공유했던 사람. ‘디에고와 나’에서는 그런 애증의 감정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감정이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된 곳이 바로 ‘눈’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프리다의 짙은 눈썹을 두고 좌·우로 엇갈린 두 사람의 시선이 보이시나요? 그리고 이 두 시선의 정점에서 세 번째 눈만이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 프리다 칼로가 남긴 재밌는 발언이 있습니다. ‘디에고와 나’가 그려진 1949년은 디에고 리베라가 화가로 활동한 지 5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디에고는 멕시코의 ‘국민 화가’였기 때문에 그의 화업 50년을 기념한 전시가 열렸죠.
이 때 프리다는 디에고에 관한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는데요. 이 글에서 프리다는 디에고를 20년 된 파트너이자 동지라고 이야기 합니다.
“사람들은 나에게 디에고에 관한 사적인 이야기를 기대할지 모른다. 또 디에고 같은 남자와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털어놓길 바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강둑에 물이 흐른다고, 흙이 비가 온다고, 원자가 에너지를 발산한다고 고통 받지 않듯이 나와 디에고의 만남은 그렇게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사람의 동반자라는 어렵고 불투명한 역할을 통해 나는 균형을 얻었다. 빨간색 속의 초록 점과 같은 균형 말이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세간의 평가와 관계없이 그녀는 모든 일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녹색이 있어야 빨간색이 돋보이고, 빨간색이 있어야 녹색이 돋보이듯 관계에 있었던 빛과 그림자를 모두 자연의 섭리처럼 받아들인다고 털어 놓고 있죠. 이런 삶의 통찰 끝에 거대한 코끼리였던 디에고는 작은 점이 되어 프리다의 머리 위에 자리하게 되었음을 ‘디에고와 나’가 보여주는 것만 같습니다.
이 그림을 그리고 5년 뒤 프리다는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그 후 시간이 지나며 프리다가 “내가 더 큰 화가”라고 장난처럼 던졌던 말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는데요. 디에고가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사회주의 벽화를 그렸던 반면, 프리다는 개인적인 삶을 솔직하게 자신만의 언어로 그렸다는 점이 시대적 변화와 맞물린 결과로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디에고 또한 프리다의 그림 속에 남아 불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겠죠.
이마에 남편을 얹은 생애 마지막 초상에서 프리다는 이런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붉은 색을 껴안는 초록색. 초록색을 포용하는 붉은색. 나와 정 반대를 흐르는 물처럼 있는 그대로 이해할 줄 아는 마음이 나를 더 큰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것. 사랑은 영원한 핑크빛이 아닌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그 모든 과정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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