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부만 읽으면 ‘소설을 가장한 맛집 기행문’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대학 시절 먹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단팥빵’을 먹어보고 죽겠다는 암 환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전국의 단팥빵 맛집을 소개하는 기행문 말이다.
폐암 말기인 경희와 딸 미르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날아온다. 경희가 그토록 먹고 싶어 하는 단팥빵을 파는 빵집이 대전에 있어서다. 그러나 빵집은 없어진 지 오래. 모녀는 전국 투어를 시작한다. 경희는 유명 단팥빵을 먹을 때마다 고개를 젓는다. 전국을 돌다 다다른 곳은 전남 목포의 빵집. ‘전설의 단팥빵’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단팥빵 빼고 다 판다. 초고수가 자신이 만든 단팥빵 맛이 변했다며 10년 전 사라지면서 단팥빵이 ‘영구 결번’이 된 것. 미르는 이 빵집 종업원으로 취직한다. 초고수의 흔적이라도 찾겠다면서.
소설 속 단팥빵 묘사를 읽고 있으면 이를 먹고 싶은 욕구가 커진다. 작가의 말을 통해 ‘빵이 너무 좋다’고 밝힌 저자가 소설 형식을 빌려 그간 하고 싶었던 빵 이야기를 다 풀어놓은 것 같다.
그러나 페이지를 넘길수록 빵 이야기이되 빵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는 빵으로 책을 가볍게 펴도록 한 뒤 심오한 인생 이야기를 풀어낸다. 경희가 찾으려고 한 건 단팥빵이 아니라 그 시절을 살던 자신인지 모른다. 남들이 최고의 맛이라고 칭찬해도 스스로 성에 차지 않아 절망한 단팥빵 초고수 정길에게선 자신의 글을 놓고 고민을 거듭하는 저자가 겹친다. 정길은 빵의 수준이 대중과 너무 멀어지면 자기만족의 허세에 갇힐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고뇌한다.
저자 역시 과도하게 독특하거나 실험적인 문체로 자기만족만 추구하지는 않는다. ‘따갑지는 않으나 결만큼은 충분히 예리해진 6월의 햇살’처럼 공감을 자아내는 세밀한 묘사가 많다. 미르, 경희, 정길 등 세 사람의 시점에서 각각 쓰인 구성과 경희의 숨은 사연에 관한 단서를 하나둘 던지며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모습을 보면 30여 년간 소설을 써온 저자의 내공이 느껴진다. 탄탄한 서사와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문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작품을 읽고 나면 초반부만 보고 단팥빵을 사먹어 버린 게 민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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