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음악계가 가벼워져서 탈입니다. 콩쿠르 지상주의, 화려한 조명, 눈을 사로잡는 연주자의 의상 등이 젊은 연주자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어요.”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75)가 3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나폴레옹 호텔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최근 클래식 음악계의 흐름에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6일 오후 8시(한국 시간 7일 오전 4시)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김홍기(30), 김도현(27), 박진형(25) 등 젊은 피아니스트 3명과 각각 피아노 한 대씩을 치는 ‘백건우와 친구들’ 협주 공연을 갖는다.
따로 제자를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백 씨는 이 3명을 직접 발탁했다. 이들은 모차르트의 ‘3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적 무곡’,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라벨의 ‘라발스’ 등을 선보인다.이번 공연은 프랑스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 문화교류단체 에코드라코레(한국의 메아리)가 개최하는 제13회 한불 친선 콘서트다.
백 씨는 이날 동석한 3명의 후배를 보며 “매번 ‘내가 왜 이렇게 밖에 못 쳤을까’라고 한탄하겠지만 돌이켜 보면 젊었을 때만 할 수 있는 음악, 가치, 진실이 있다”며 격려했다. 제자를 키울 겨를도 없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제자 양성에 열린 생각을 갖게 됐다고도 했다. 새로운 연주를 접하기 위해 수시로 유튜브에서 젊은 연주자의 영상을 찾아본다는 그는 “이번 공연에서도 후배들과 서로 아이디어를 나눴다”고 밝혔다.
백 씨는 특히 유명 콩쿠르 성적에 목을 매는 현 음악계의 ‘줄 세우기’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력을 쌓는 훈련이라는 측면에서 콩쿠르가 필요한 면도 있지만 음악의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며 음악에서의 1, 2, 3등 순위 비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음악의 세계는 지구보다 넓은 반면 우리가 아는 음악 세계는 베토벤, 모차르트, 차이코프스키, 유명 오페라 몇 개 정도”라며 “세상에는 좋은 음악이 너무 많은 만큼 다양한 음악을 알리는 제도가 갖춰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65년간 피아노를 쳤으니 이젠 할 만큼 했다’는 매너리즘이 생기냐고 묻자 “매번 ‘이번 연주를 잘했다’는 만족감은 없다”며 “실수하고 넘어지면 일어나서 또 부딪힌다. 그런 ‘사랑’을 버리지 못해 평생 음악을 한다”고 답했다. 그는 “음악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몇 년 만에 갑자기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고 한다면 착각”이라며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피아노 독주회의 경우 2시간가량의 무대가 오롯이 연주자 손끝에 달려있다. 떨리고 힘들 수밖에 없다”며 “나도 (젊은 시절) 무대에 서기 전 얼마나 떨렸던지 손을 보면서 ‘과연 이 손이 움직일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백 씨는 “악보도 100개를 다 외워서 했다”며 “이제는 곡을 통째로 암기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무대에서 악보를 놓고 연주한다”고 밝혔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아내 윤정희 씨(77)의 친정 식구들은 그와 딸이 병든 윤 씨를 파리에 방치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그는 10월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이런 일이 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묻자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다만 “음악의 끝은 결국 인간으로 귀결된다”며 “음악은 우리 삶에서 온다. ‘삶을 얼마나 깊이 깨달았느냐’에 따라 음악도 깊어진다”고 덧붙였다.
백 씨는 65년 간 추구해온 연주 스타일에 대해 “항상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연주하는 것을 추구해왔다”며 “두 개의 점이 있으면 제일 가까운 거리를 찾고 이를 어떻게 연결이 되는가에 집중했다. 음악은 결국 두 음을 연결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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