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현실 풍자한 블랙코미디 ‘… 청와대로 간다’ 윤성호 감독
“짓궂은 상상이지만 현실감 고려… 의원 보좌관들 SNS도 참고
누굴 가르친다는 생각 없어… ‘뭔가 아이러니하네’ 정도만
느낄 수 있다면 성공한 것”
임기가 1년가량 남은 정권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사고를 친다. 화상회의 카메라가 켜진 줄 모르고 변태적인 사생활을 만천하에 노출한 것. 청와대는 수석·보좌관회의를 열고 후임 장관 물색에 나선다. 후보자 선정에 동원한 방법은 일명 ‘손병호 게임’. 다주택자 접고, 아들 군 면제, 탈세, 논문 표절, 장관 자리 주면 대선에 관심 가질 사람까지 접었다. 10여 명 중 남은 사람 0명. 대통령비서실장이 외친다. “다시 펴! 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사진)의 한 장면이다. 드라마는 ‘충격은 파격으로 덮는다’는 인사 전략 아래 신임 문체부 장관이 된 올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 이정은(김성령)이 대선 잠룡이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대선 잠룡을 다룬 드라마가 대선 정국을 만난 데다 당정청, 야당 등에 대한 풍자를 두고 ‘극사실주의’라는 호평이 이어지면서 지난달 12일 공개된 이 드라마는 뒤늦게 화제가 되고 있다.
각본을 공동 집필한 윤성호 감독(45)은 6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드라마 내용은 대부분 상상으로 만든 것이다. 정치 블랙코미디인 만큼 짓궂은 상상일수록 괜찮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어 “다만 국회를 출입한 기자들을 취재하는 등 팩트 체크를 해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를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했다.
드라마 속 세계는 국회, 정부 부처, 청와대, 언론의 현실을 길어 올린 다음 상상과 유머를 더해 재창조한 제2의 현실 같다. 디테일한 설정은 드라마 몰입에 큰 몫을 한다. ‘80년대 김연아’ 이정은은 위기를 겪던 야당(2016년 당시엔 여당)의 영입으로 20대 국회의원이 된다. 그러나 거수기 역할만 하다가 차기 공천에서 배제된다. 직업 없이 지내다가 진보 시사평론가와 결혼하고 보수 정당 출신의 진보 정권 장관으로 돌아온다. 윤 감독은 “이정은 캐릭터를 만드는 데 전 야당 의원과 전 장관 등 여러 인물을 참고하긴 했다”라며 “국회 내용은 국회의원 보좌관들이 주로 활동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참고했다”고 했다.
드라마는 OTT를 볼 때 유행하는 10초 건너뛰기가 어려울 정도로 대사와 스토리로 꽉 채워져 있다. 윤 감독은 “일단 보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게 만들기 위해 각본의 밀도와 속도감에 공을 들였다”고 했다.
풍자라는 잽은 쉴 새 없이 날아든다. 여기에 현실감 넘치는 대사가 더해지면서 보는 내내 킥킥거리게 된다. 그 칼날은 특정 진영을 향하진 않는다. 진보 보수 모두 평등하게 풍자한다. 4선 야당 의원인 차정원(배해선)이 1.8%인 자신의 지지율을 나타낸 그래프를 보며 “이거 뭐 그래프야 볼펜똥이야”라며 자조하는 장면 등 감독을 ‘풍자의 신’이라 해도 될 만한 명대사도 많다. 그러나 정작 감독은 “누구도 풍자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폐부를 찔러 누군가를 아프게 할 생각은 없었어요. 재미가 최우선이었죠. 누군가를 가르치겠다는 생각은 더더욱 없었고요. 다만 ‘뭔가 아이러니하네’ 정도만 느끼실 수 있다면 블랙코미디로는 괜찮은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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