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가 안전한 세상/존 아이켄베리 지음·홍지수 옮김/536쪽·3만 원·경희대출판문화원
“동맹국들이 수년간 미국에 바가지를 씌우고 있다. 우리를 벗겨 먹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8월 대통령 선거운동 당시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꺼낸 얘기다. 무역수지나 방위비 분담 등에서 동맹국들이 미국을 이용해먹고 있다는 그의 비난은 미국의 전통적인 동맹외교 원칙에 핵 펀치를 날리는 것이었다. 실제로 트럼프는 한미 방위비 협상에서 잠정 합의된 13% 인상안을 거부하고 50% 인상을 무리하게 밀어붙여 양국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위기의 실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란 공통의 국제규범과 제도를 통해 국가 간 상호 의존이 심화되면 윈윈할 수 있다는 시각으로, 제로섬의 자국이익 추구를 중심에 놓는 현실주의와 대비된다.
저자에 따르면 탈냉전 이후 미국 리더십의 쇠퇴와 중국 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들의 부상, 트럼피즘으로 대표되는 배타적 민족주의, 세계적 불평등 심화 등이 맞물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흥미로운 건 국제정치학에서 자유주의를 대변해온 저자가 자유주의적 국제주의가 미국 패권 추구에 이용됐음을 반성한 대목이다. 미국 정부가 외교정책의 우선순위로 삼는 이른바 ‘인권 외교’가 국익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된 사례들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기후위기와 최근의 팬데믹 사태에 이르기까지 국가들의 상호협력이 절실해지는 상황에서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를 포기할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다만 자유주의를 지키는 방식에서 과거보다 덜 공세적인 자세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내전 등에서 확인되었듯 미국의 자유주의 가치를 다른 나라에 이식하려는 공세적 시도는 더 이상 성공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책장을 덮는 순간, 미국 입장에서 합리적인 결론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건데?”라는 현실주의 관점에서의 비판이 스멀스멀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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