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아트로드]전국 한우 미식여행
매콤고소 육회물회… 쫄깃바삭 불고기…
“최상급은 구운 후 양념없이 맛봐야”… 함평 육회 된장물회-비빔밥도 일품
서울 광양 언양 각기 다른 불고기맛… 양념뒤 버섯-미나리 곁들여 풍미 높여
《“한우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토종 소 중 하나로 2000년 이상 한반도에 살았다. 고베 비프와 같은 느끼한 일본 와규처럼 마블링에 압도당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미국 프라임 소고기의 살코기 풍미까지 전부 갖춘 완벽한 균형감을 갖고 있다.” 올해 3월 5일자 미국 최대 일간지 USA투데이는 ‘한우가 지구상 최고의 고기가 될 수 있는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홍콩에서 활동하는 저널리스트인 케이트 스프링어가 한우를 처음 취급하기 시작한 홍콩 레스토랑에서 일본, 미국, 홍콩, 프랑스산 소고기와 비교 시식한 결과를 기사화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최상급 식재료는 여전히 한우다. 지역별 다양한 한우 요리를 즐기는 ‘한우 미식(美食) 여행’을 떠나 보자.》
○ 눈꽃한우비빔밥과 한우육회물회
“마치 바다에 떨어진 눈처럼 혀 위에서 녹아 불현듯 목구멍으로 사라져 버리는 그 육즙의 맛을 찾습니다.”(허영만의 만화 ‘식객-소고기전쟁’)
선홍빛 살코기에 눈꽃처럼 흩뿌려진 마블링. 전남 함평의 해월축산·식육회관에서 만난 한우는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웠다. 잘 달궈진 불판에 두툼하게 썰어낸 꽃등심을 한 점 구워 입안에 넣는 순간, ‘바다에 떨어진 눈처럼 혀 위에서 녹는다’는 말이 현실로 느껴졌다. 씹을 때마다 폭발하는 육즙! 입안에서 코끝까지 맴도는 풍미가 진한 육향을 남긴다.
“고기는 소금, 참기름, 와사비, 양념장 등 취향에 맞게 찍어 드시면 돼요. 그러나 ‘투뿔 넘버나인(1++ No.9)’ 등급의 최상급 친환경 한우는 어떤 양념도 찍지 말고, 먼저 고기 맛 자체를 즐겨 봐야 합니다. 숯불에 구우면 어떤 고기도 다 맛있게 되니까, 그냥 불판에 구운 후 음식 재료 본연의 맛을 느껴 보는 걸 추천합니다.”
이다윤 대표(52)는 인근 농장에서 가족이 직접 기른 미경산 한우(출산 경험이 없는 36개월 전후 암소)의 신선함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소고기 코스 요리 중에 제일 처음에 즐기는 생고기는 숙성이나 양념 여부에 따라 육회, 육사시미로 나뉜다. 양념을 하지 않은 육사시미는 전라도에서는 ‘생고기’, 대구와 경북에서는 ‘뭉티기’로 부른다. 함평에서는 접시에 담긴 생고기가 거꾸로 뒤집고 흔들어도 절대 안 떨어진다고 해서 ‘찰떡 생고기’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기름기가 적은 앞다리살과 보통은 얼려서 구워 먹는 차돌박이도 생고기로 먹는다. 참기름을 약간 묻힌 후 새콤하게 익은 묵은지에 싸서 먹는 맛은 일품이다.
한우 생고기와 구이로 약간 느끼해질 무렵 입맛을 개운하게 만드는 강력한 반전의 요리가 나온다. ‘한우 육회 된장물회’다. 물회에 갓 잡은 생선회나 해물이 아닌 육회가 들어간다고? 처음엔 의아했지만 먹어 보니 ‘아!’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된장을 베이스로 한 육수가 한우와 잘 어울린다. 양념 속에는 사과, 배, 오이, 파프리카, 양파 등 각종 과일과 채소가 들어가고, 한우 육전도 들어 있다. 첫맛은 시원한데 얼굴에서는 땀이 난다. 청양고추를 삭힌 양념이 들어가 은은하게 매운맛이 깔끔하게 뒷맛을 잡아준다. 한우된장물회는 소면을 넣거나, 밥을 말아 먹어도 고소한 별미를 느낄 수 있다.
한우 요리의 마지막 코스는 ‘한우 눈꽃비빔밥’이다. 밥 위에 9가지 야채와 해초가 쌓여 있고, 그 위에 ‘눈꽃 같은’ 한우 육회가 소복이 올라간다. 소고기 선지국물을 한 스푼 넣고 수저로 꼭꼭 눌러가며 비빈다. “밥물과 나물물이 하나로 비벼져야” 한우 육회 비빔밥의 풍미가 제대로 완성되기 때문이란다.
○서울, 광양, 언양식 3대 불고기
우리나라에서 소고기는 ‘일두백미(一頭百味)’라는 표현이 있었다. 한 마리 소에서 100가지 맛이 난다는 뜻이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영국 프랑스는 소를 35부위로 나눠 먹는데, 한국은 120부위로 먹는다”며 감탄했다. 요즘 같은 추운 겨울. 조선시대 양반들 사이에서는 ‘난로회’를 여는 문화가 유행했다. 김홍도의 그림 ‘설중난로도’에는 양반과 기녀가 소나무 밑에 돗자리를 깔고 삼삼오오 앉아 소고기를 구워 먹는 모습이 묘사돼 있다.
1980년대 마이카 시대가 열리면서 본격적으로 소고기 맛집을 찾아다니는 한우 외식여행이 시작됐다. 대표 주자는 불고기였다. ‘한국의 3대 불고기’는 서울식, 광양식, 언양식 불고기가 꼽힌다. 서울식 불고기는 얇게 썬 등심을 양념한 후에 달콤한 육수를 자작하게 내어서 야채와 당면을 넣어 먹는다. 반면 광양식 불고기는 고기를 굽기 직전에 양념한 다음 석쇠에 올려 참숯불에 구워 먹는 바싹불고기다.
언양불고기는 1960년대 당시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했던 근로자들이 언양의 고기 맛을 알리기 시작하면서 유명해졌다. 울주군 언양알프스시장에서 만난 언양불고기는 인근 언양우시장에서 도축한 지 24시간 이내의 신선한 한우 불고기를 언양미나리와 곁들여 먹는 별미였다. 간장과 마늘 등 최소한의 양념만을 사용해 3일간 숙성시켜 고기 자체의 맛을 살렸으며, 석쇠 위에서 타지 않도록 살짝 굽는 것이 특징이다.
○담양떡갈비와 너비아니
궁중요리인 떡갈비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지만 일반적으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전남 담양 떡갈비이다. 전라도 한우는 연하고 육즙이 많아 두꺼운 정육면체로 부쳐서 갈비의 쫀득한 맛을 살리는 것이 특징이다.
대나무로 유명한 담양 소쇄원 인근에 있는 ‘전통식당’은 미식가들 사이에서 손꼽히는 맛집이다. 이곳에서 ‘소쇄원한상’을 시키면 담양떡갈비를 비롯해 육전, 홍어찜 등이 푸짐하게 나온다. 고산 윤선도의 11대 후손인 친정어머니에 이어 27년째 식당을 운영해 온 김난이 대표(69)는 반가(班家)의 음식상 차림을 전승해 왔다. 그는 “담양식 떡갈비는 오직 한우 갈빗살만 가지고 만든다”며 “집안에 내려오는 오래된 간장으로 양념하는 것이 포인트”라고 말했다.
‘너비아니’는 소고기를 얇고 넓게 저며서 양념장에 재워 석쇠에 구운 음식이다. 너비아니라는 이름의 유래는 고기를 너붓너붓 썰었다는 데서 유래한 것인데 서울 지역 사투리의 하나다. 너비아니는 소고기의 등심이나 안심을 넓적하게 저며서 간장 위주로 양념하여 불에 구운 음식으로 서울 지역 양반가에서 주로 즐기던 고기구이다.
○한우 여행 정보
전국 곳곳에 있는 우시장과 직판장, 한우마을에서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한우를 즐길 수 있다. 복잡한 유통 절차가 대폭 축소돼 비교적 싼 가격에 질 좋은 고기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서울 마장동 우시장은 한우 오마카세(메뉴를 주방장에게 맡기는 요리)로 유명하고, 전북 정읍의 산외한우마을, 충남 예산 광시암소한우타운, 경북 예천 지보참우마을, 강원 영월, 경기 김포의 다하누촌, 울산 봉계언양 한우 불고기 특구 등도 많이 찾는다.
전국 한우 농가들이 만든 한우자조금이 운영하는 ‘한우 유명한 곳’에서는 한우 판매점으로 공식 인증받은 직판장과 맛집을 소개해 준다. 한우명예홍보대사인 조리기능장 엄유희 교수는 “지역별 음식 특색이 다른 것처럼 한우도 어떤 지역에서 키우느냐에 따라 맛도 다르다”며 “코로나 시대 지역별 한우 요리의 다양한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음식점을 찾아 맛으로 여행 기분을 대신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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