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주말극 ‘설강화’ 방영중지 청원이 30만명을 넘어섰다. 역사 왜곡 논란이 커지자, 기업들은 잇따라 광고 협찬을 중단했다. 청년 시민단체가 설강화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예고하는 등 사태가 확산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난 19일 ‘드라마 설강화 방영 중지 청원’ 글이 올라왔다. 하루 만인 20일 청원 동의 수 20만명을 돌파했고, 21일 오전 8시 기준 30만명을 넘어섰다.
청원자는 “1회에서 여주인공(지수)은 간첩인 남주인공(정해인)을 운동권으로 오인해 구해줬다”며 “민주화운동 당시 근거없이 간첩으로 몰려서 고문을 당하고 사망한 운동권 피해자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저런 내용의 드라마를 만든 것은 분명히 민주화운동 가치를 훼손시키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1회에서 ‘임수호’(정해인)는 안기부 요원인 ‘이강무’(장승조)로부터 도망치며 민주화 투쟁을 하는 학생 사이를 지나쳤다. 그 때 배경음악으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가 흘러나왔다. 1980년대 민중가요로 민주화운동을 하던 학생들이 부른 노래다. 2009년 김대중 대통령 서거 당시 추모곡으로 쓰였다.
청원자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는 민주화운동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고통과 승리를 역설하는 노래다. 그런 노래를 1980년대 안기부를 연기한 사람과 간첩을 연기하는 사람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것 자체가 용인될 수 없는 행위”라며 “이 드라마는 OTT 서비스를 통해 세계 각국에서 시청할 수 있다. 다수 외국인에게 민주화운동에 대한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기에 더욱 방영을 강행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설강화는 1987년 서울을 배경으로 여자 기숙사에 피투성이로 뛰어든 명문대생 ‘임수호’(정해인)와 위기 속에서 그를 감추고 치료해준 여대생 ‘은영로’(지수)의 로맨스다. ‘SKY 캐슬’(2018~2019) 유현미 작가·조현탁 PD가 뭉쳤다. 지난 3월 원제인 ‘이대기숙사’ 시놉시스와 캐릭터 소개 글 일부가 온라인상에 유출, 민주화운동 폄훼·안기부 직원 캐릭터 미화 의혹을 받았다.
더욱이 글로벌 OTT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 외국인에게 민주화 운동 관련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가 높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에는 디즈니+에 ‘’스트리밍을 중단하라‘며 항의 메일을 보낸 인증샷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인 이용자는 20일 영어권 최대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에 ’한국 드라마 ‘설강화’가 매우 문제적인 이유‘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작성자는 안기부를 반정부 인사를 간첩으로 공작한 정부기관으로 적시하고 ’실제 간첩과 접촉한 인사를 처벌한다‘는 식으로 묘사했다고 비판했다. “넷플릭스에 나치를 좋아할 만하고 미화할 만한 대상으로 묘사하는 드라마가 나온다면 어떻게 반응할 것이냐”고 했다.
해외 네티즌들 역시 설강화를 향한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한 해외 네티즌은 “서양에서 한국 역사에 신경쓰지 않는다”면서도 “이 드라마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에게) 모욕적”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네티즌은 “서양의 팝스타나 여배우가 나치를 좋게 포장하는 드라마에 나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며 “지수가 비슷한 맥락의 드라마에 나온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여주인공인 그룹 ’블랙핑크‘ 지수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를 원망하는 댓글도 적지 않았다. “지수 소속사는 조금 더 가벼운 로맨스 작품을 골랐어야 했다. 지수가 직접 골랐다고? 무슨 생각으로?” “설강화는 문제가 너무 많아서 출연 배우들 전체 커리어가 망가질 판이다. 애초에 지수가 이 드라마에 참여하지 않았어야 했다” “블랙핑크 팬들이 (설강화) 역사 왜곡 사실도 모른 채 그저 방영해달라고 소리치는 게 안타깝다” 등이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기업들도 손절에 나섰다. P&J그룹 넛츠쉐이크를 비롯해 헤어케어 브랜드 다이슨, 차 브랜드 티젠, 도자기 브랜드 도평요, 패션 브랜드 가니송, 떡 브랜드 싸리재마을, 한스전자 등이 제작 지원 혹은 광고 협찬을 중단했다. 특히 치킨 브랜드 푸라닭도 제작지원·협찬 철회를 선언했다. 푸라닭은 설강화 3대 제작지원사 중 한 곳으로, 설강화 주연인 탤런트 정해인이 모델로 활동 중이다.
비영리단체 세계시민선언은 22일 서울서부지법에 설강화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낼 예정이다. 20일 “국가폭력 미화 드라마 설강화에 상영금지 가처분을 신청한다”며 “설강화는 수많은 민주화 인사들을 이유없이 고문하고 살해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소속의 서브 남주인공(장승조)을 우직한 열혈 공무원으로 묘사했다. 간첩이 우리나라 내부에서 활약하며 민주화 인사로 오해 받는 장면을 삽입했다. 과거 안기부가 민주항쟁을 탄압할 당시 ’간첩 척결‘을 내걸었던 것을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군부독재에 온몸으로 맞서던 이들에 대한 명백한 모독이다. 현재진행 중인 군부독재 국가들에 자칫하면 세월이 지나면 자신들의 국가 폭력 또한 미화될 수 있다는 시그널을 줄 수 있는 위험천만한 행위”라며 “JTBC라는 파급력이 큰 채널을 통해 한국 민주화에 대한 왜곡된 역사관을 심어주고, 출연하는 스타 편을 들고자 무작정 국가폭력 미화 행위까지 정당화하는 그릇된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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