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제는 건문제가 해외로 도망간 것으로 의심하고 그의 종적을 추적하는 동시에 이역 땅에 군사력을 과시해 중국의 부강함을 알리고자 했다.’
명사(明史)에 기록된 정화(鄭和·1371∼1433)의 대항해 관련 대목이다. 환관들의 우두머리인 태감 직위에 오른 정화는 영락제의 신임을 받아 함대를 이끌고 7차례 원정에 나섰다. 항로는 동남아시아를 거쳐 인도, 아랍, 동부 아프리카까지 이어졌다.
정화는 종종 ‘동양의 콜럼버스’로 불리지만 이는 과소평가라는 게 저자들의 견해다. 그의 선단은 범선 60여 척에 약 2만7800명을 실은 거대한 규모였다. 이에 비해 콜럼버스는 이로부터 약 90년이 흐른 1492년 단 세 척의 배로 항해에 나선다.
책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기획한 아시아플러스 시리즈로 기획됐다. 저자들은 정화가 아버지 때부터 독실한 이슬람 신자였으며, 동남아 일대에서 정복자의 이미지를 넘어 신적 존재로 추앙받은 사실에 주목한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인도네시아에서 정화를 앞세운 모스크가 잇따라 건립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동남아 일대에 전하는 정화에 관한 신화와 사원의 흔적을 더듬으며 국가와 종교, 중국인 이주자와 현지인의 관계를 세밀히 분석한다. ‘21세기에 정화는 다원주의, 종족적 하이브리드, 이주 역사의 새로운 구심점이자 키워드’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