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지킬앤하이드’ 국내 최다주연 맡은 ‘지킬장인’ 류정한
17년전 국내초연 무대 이끈 ‘류지킬’ 더 섬뜩한 모습으로 무대 올라
“애정과 욕심…묘한 희열 주는 작품
팬데믹시대 ‘관객 대면’ 정말 감사…네살 딸이 공연 볼때까지 노래할 것”
2004년 7월 24일은 한국 뮤지컬의 새 막이 열린 날로 평가된다. 뮤지컬의 대중화를 이끈 작품이자 최고 흥행작 중 하나인 ‘지킬앤하이드’의 국내 초연 개막일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지킬 역의 배우 류정한(50)은 김소현, 최정원과 호흡을 맞추며 새로운 전설의 시작을 알렸다. 같은 배역을 번갈아 연기한 조승우를 비롯해 김아선, 소냐 등이 꾸민 무대는 연일 평단과 관객의 호평이 이어졌고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 기록을 남겼다.
17년 전 첫 무대를 떠올리며 “한마디로 밑천이 없던 때다. 별생각 없이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만 신경 썼다”던 류정한이 한층 더 섬뜩한 모습의 ‘류지킬’로 다시 나타났다. 탁월한 가창력과 치밀한 연기는 그의 무기. 지킬 역할을 국내에서 가장 많이 소화하며 ‘지킬 장인’으로 불리는 그가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지킬앤하이드’로 관객과 만난다. 그는 “지킬 공연 300회를 채우고 싶다”며 “애정과 욕심이 가득 담긴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류정한은 “작품이 너무 힘들어 매번 그만두겠다고 입버릇처럼 여러 번 말했다”며 웃었다. 하지만 “‘지킬’을 완성하고 싶다는 욕심도 동시에 생기더라. 이런 욕심은 모든 배우에게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했다. 또 “무대에서 몸은 힘들어 죽을 것 같아도 정신은 도리어 맑아지는 묘한 희열을 주는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에서 1997년 초연한 이 작품은 국내 누적 공연 횟수 1400회, 누적 관람객 150만 명에 달하는 대표적 스테디셀러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지금 이 순간’이 작품 속 ‘킬링 넘버’다. 인간 내면의 선악과 양면성을 내세운 원작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각색했다. 선한 의사 지킬은 인간의 선과 악을 분리할 수 있다고 믿는 인물. 자신의 몸에 약물을 투여해 실험체로 삼고, 두 개의 자아인 지킬과 하이드를 오가며 갈등한다.
극중 대결 장면에서 시시각각 180도 돌변하는 1인 2역 연기는 명장면으로 꼽힌다. 객석을 향해 손을 뻗는 류정한은 “결국 ‘당신도 우리도 모두 선과 악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 않느냐’고 묻는 게 극의 핵심”이라고 했다.
류정한은 좀처럼 언론 인터뷰에 나서지 않기로 유명한 배우다. 하지만 막상 인터뷰에서 만난 그는 지킬을 다시 맡은 소회 말고도 하고픈 얘기가 많아 보였다. 그는 “팬데믹을 겪으며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무대들을 돌아봤다. 다시 관객과 만나는 것만으로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내년이면 데뷔 25주년을 맞는 뮤지컬 대선배로서의 책임감, 고민도 가득했다. 그는 “드라마, 영화와 달리 공연은 언제 멈출지 모르는 불안 속에 흘러간다. 위험을 무릅쓰고 ‘공연 보러 오라’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상황도 참 어렵다”고 털어놨다.
서울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그는 1997년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로 데뷔했다. 이후 ‘오페라의 유령’을 비롯해 거의 모든 국내 흥행작의 초연을 맡은 입지전적의 경력을 쌓았다. 류정한은 “운이 좋았다. 뮤지컬이 자리 잡는 초창기라 수혜를 받았다. 제 목소리, 발성, 연기가 싫을 때도 있었지만 무대에서 오래 버틴 게 큰 미덕”이라고 했다.
그가 버틴 세월만큼 그를 보고 꿈을 키운 후배도 많다. 현재 뮤지컬 작품에서 주연으로 활동하는 카이, 전동석은 물론 함께 ‘지킬앤하이드’에 출연 중인 신성록, 홍광호 등 후배들은 그의 팬클럽을 자처하며 요즘에도 “자리를 잘 지켜주는 형이 고맙다”고 고백한다고.
얼마 전부터는 무대에서 오래 버텨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그는 “네 살인 딸이 공연장에서 제 무대를 보려면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60세까지 노래하고 싶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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