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들은 스쳐간다. 올 가을의 단풍, 사랑하던사람, 그리고 간밤의 하얀 눈. 문득 창밖을 보며 아름답다 깨달았을 때 그들은 이미 떠나가고 없었다. 새해를 맞이하며 거대한 포부와 희망을 기원하는 대신 지워지고 잊혀지는 것들에 대해 기쁘게 안녕하는 법도 배워야겠다고 다짐한다. 새해는 혼밥이다. 씁쓸하지만 또 그렇게 바라던 여유도 생긴다. 혼자이지만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다. 다행히 식욕은 삶의 수레바퀴가 돼 일상을 안전 속도로 굴러가게 했다. 칼국수가 생각나고, 찐만두도 먹고 싶고, 칼칼한 육개장도 떠오를 때 찾아가는 곳이 있다.
대전 유성구 ‘유성할매국수’는 음식에 집밥의 정성이 스며있는 곳이다. 겨울에는 육개장, 칼국수, 만두가 어우러진 ‘육칼두’가 인기다. 칼칼한 육개장에 수제 칼국수와 만두를 푸짐하게 담아준다.
이곳 사장님은 아름다운 여성인데 왜 ‘할매국수’라는 간판을 달았을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칼국수를 끓일 때마다 할머니가 떠오른다고 했다. 어렸을 적 칼국수가 먹고 싶다고 칭얼대면 할머니는 손녀가 잠이 들면 어두운 불빛 아래 숨죽여 반죽을 치대고 밀고 자르고 따스한 국물에 끓여 주셨고, 사장님은 그 마음을 잇고자 음식을 시작했다고 한다.
육칼두의 기본은 맛있는 육개장이다. 사골과 잡뼈를 진하게 우려내다가 양지와 사태를 넣고 함께 끓인다. 대파와 고사리도 푸짐하게 넣는다. 손수 만든 향신 기름은 국물을 칼칼하고도 깔끔하며 매콤하고 잡내가 없도록 만든다. 부드럽게 삶아진 사태와 양지는 든든한 고명이 되고 대파의 시원함과 고사리의 구수함이 조화를 이룬다. 직접 제면한 칼국수는 부드럽게 허기를 채운다. 반죽에 첨가제를 넣지 않고 족타 반죽 뒤 하루 동안 저온 숙성시킨다. 쫄깃함은 배가 되고, 먹고 나면 속이 편하다.
육칼두의 끝 글자를 담당하는 만두는 그야말로 이 음식의 ‘센터’다. 만두피를 밀고 만두 속을 다져내며 잎새 모양으로 빚어내기까지 과정은 대부분 수작업이다. 만두피는 반죽을 하루 정도 숙성해 얇게 빚어도 탄탄한 모양을 유지하되 먹고 나서는 소화가 잘 되도록 한다. 육칼두에는 고기만두 하나와 김치만두 하나가 들어간다. 고기만두에는 돼지고기와 두부가 든든한 영양을 주고 당면의 쫄깃함에 당근과 대파의 시원한 달콤함이 있다. 특히 마늘과 생강을 배합해 잡내가 없고 개운하다. 김치만두에 들어가는 김치도 직접 담는다. 아삭하되 칼칼하게 매운 김치가 육즙과 어우러진다. 만두는 따로 한소끔 쪄낸 후 육개장에 올려내니 모양도 맛도 오롯이 조화롭다.
사장님은 자녀가 아토피가 걸려 고생을 해 보았기에 앞으로도 건강식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한 그릇의 육칼두는 마음의 허기부터 차곡차곡 채워줬다. 얼큰한 육개장 한입에 목구멍이 열리고 칼국수는 그 틈으로 빨려 들어갔다. 국물이 촉촉하게 베인 달근한 만두를 베어 물자 떠나보낸 추억의 빈자리에 또 다른 아름다운 것들이 스며둘 것이라고 믿게 됐다.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nalgea@gmail.com
#2017년 이후 햇수로 5년 동안 연재된 맛집 칼럼 ‘오늘 뭐 먹지’가 막을 내렸다. “꼬르륵” 어김없이 찾아오는 ‘배꼽시계’에 도움이 될 나침반을 찾아 불철주야 뛰어다닌 필자들의 못 다한 이야기를 싣는다.
석창인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천성이 게으른데다 모든 일에 쉽게 싫증을 내는 제가 5년 가까이나 음식이야기를 쓴 것은 분명 놀라운 일이지만, 졸문에 동아일보의 귀한 지면을 기꺼이 내어주신 것 자체가 워낙 경이로운 일인지라 우선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대개 음식에 관한 글을 쓰시는 분들은 전업 작가 또는 연관된 일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지만 저는 생뚱맞은 직업을 갖고 있으며, 전문지식도 별로 없는 아마추어인지라 처음 글을 의뢰받았을 때 무척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일반 독자가 갖는 상식 수준에서 우리의 일상 이야기와 음식을 같이 풀어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결국 전문용어를 써가며 세세하게 맛을 분석하는 미시적 음식평론가가 아닌, 상식을 대충 얼버무린 거시적 평론가를 자처한 것이지요.
새해에는 제가 환갑이 됩니다. 학자들은 그간의 논문들을 모아 책을 내기도 하지만, 저는 각종 매체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 기록으로 남겨둘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 글로 인해 알게 모르게 상처를 받으신 분들이나 식당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려 용서를 구합니다. 앞으로도 저의 식도락 여행은 계속 될 터이고, 더욱 많은 지식과 경험을 쌓아 다시 또 독자들을 뵙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이윤화 음식평론가·‘대한민국을 이끄는 외식 트렌드’ 저자
외식 트렌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의 장기화는 다양한 ‘HMR’(Home Meal Replacement·가정간편식)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이라는 큰 변화의 흐름을 가져왔다. HMR의 주장은 “식당까지 오지 않아도 된다. 집에서 식당과 똑같은 맛을 즐기라!”라는 것이다. 쟁반 수육, 삼겹살구이, 탄두리치킨 등 식당에서나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음식들을 밀키트나 냉동 간편식으로 만날 수 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식당이 없어도 되는 건가? 식당수가 지금보다 훨씬 줄어도 가능한 걸까? 식당은 단순히 음식만 먹기 위한 곳일까? 여러 의문이 든다.
얼마 전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성악가 조수미의 공연을 다녀왔다. TV나 다른 음원을 통해 그의 노래를 들어보지 않은 한국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방역을 위한 거리두기와 추위 속에서도 치열한 티켓 구매전을 통해 관객들이 콘서트홀에 모여들었다. 그의 육성과 공연장의 열기에 빠져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최고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가수의 목소리라도 라이브를 절대 따라가지 못하리라.
바로, 라이브다!!
맛집 메뉴 또는 실력 있는 셰프의 음식을 가정에서 간편식으로 먹을 수도 있지만 위험과 불편을 감수하고 식당까지 가는 이유는 음악 공연과 같은 생생한 라이브의 체험을 위해서다. 셰프가 만드는 음식은 그날 컨디션에 따라 맛이 약간 다를 수도 있고 식재료에 따라 계절과 시장의 변화를 느낄 수도 있다. 또한 음식을 먹는 공간의 분위기를 만끽하며 음식에 대한 깊이 있는 설명을 들을 수도 있다. 옆 테이블의 고객 반응도 함께 공감할 수 있다. 아무리 잘 만든 HMR로도 대체할 수 없는 외식 라이브의 매력이다.
라이브 맛집 칼럼을 쓰기 위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유명 식당보다는 식재료에 중심을 둔 맛집을 찾거나 독창적인 음식 철학을 묵묵히 지키는 셰프의 맛집을 찾아다녔다. 여러 번 찾아가 식사하거나 주인장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기도 했다. 직업 특성상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다 보니 서울 뿐 아니라 목포 무주 철원 울릉도 등 지역 곳곳의 향토 맛집들, 특히 미역, 토마토, 가지, 마늘 등 우리 식재료를 의미 있게 메뉴화한 식당은 고갈되지 않는 나만의 맛집 이야깃거리의 원천이 됐다. 50여 개 칼럼을 다시 찾아보니 공통점은 바로, 라이브 맛집이었다. 외식을 통해 경험한 한 끼 한 끼의 식사를 보다 진지하고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이끌어준, 즐겁고 맛있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부족한 맛글을 읽어주신 독자 분들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
이상황 배리와인 대표
오늘 뭐 먹지? 풍요로운 시대에 돌연 우리에게 안겨진 성가신 고민거리입니다. 풍요 속 빈곤이라고 먹거리가 넘쳐 날수록 선택은 더욱 어려워집니다. 선택불가증후군. 그래도 ‘사육’보다는 ‘방목’이 낫지요.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 중 먹는 것이 가장 보수적입니다. 요즘 입는 것, 자는 곳은 세계 어디를 가나 비슷비슷해도 먹거리는 지역별로 크게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이런 보수성이 한 끼를 결정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을 주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음식은 한 지역의 문화를 구성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고, 먹는 것은 이 세상에서 무 엇보다도 문화적 행위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먹고 마신다는 것은 관습을 거슬러 새로운 가치에 접근해 본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약간은 낯선, 그리고 다른 방식의 먹거리와 이를 둘러싼 문화, 이런 걸 소개해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세계로, 또 세계는 우리로! 새해에는 포만감만 가득한 구시대의 모습을 벗어던지고, 어린 아이 같은 호기심과 사려 깊은 관찰을 통해 또 다른 미각의 세계를 발견해가는 소소한 즐거움을 누려보시길 기원합니다. 송구영신!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상권과 유명함을 떠나 작고 소박한 식당. 마음씨만큼이나 손맛도 뛰어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음식을 만들어서 사람을 대접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나는 그들의 수고에 아주 조금의 이윤이 남을까 말까 하는 돈을 지불하고 맛있게 먹고 돌아왔다. 훗날 문득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들어 그 음식이 사무치게 먹고 싶어진다. 그럴 때 마다 이 칼럼을 쓰게 된 것 같다. 냉동시켜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기술, 대량생산하여 대량 유통할 수 있는 시스템, 집에서도 편하게 배달시킬 수 있는 서비스가 이 세상을 지배하는 트렌드라 해도 나는 내 생에 가장 중요한 시간, 가장 중요한 사람과는 진심 어린 식당에 가고 싶다.
맛있는 음식을 떠올릴 때는 요리사의 미소, 따스한 손길, 음식이 품은 온기가 함께 한다.
건강하고 맛있고 따스한 음식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맛보고 향기를 맡을 수 있고, 입으로 가슴으로 만끽할 수 있는 행복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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