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가 사는 집/멀리사 와이즈 글·케이트 루이스 그림/216쪽·1만6000원·아트북스
멕시코 전통미 가득한 칼로의 집… 특유의 개성있는 화풍과 닮아
예술가 17명의 집을 그림으로 기록… “삶이 깃든 공간 통해 작품 이해”
예술가처럼 재택근무를 자주 하는 이들이 또 있을까 싶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닥치기 전에도 예술가들은 집에서 일했다. 집 한편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집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캔버스에 담았다. 예술가들이 오래 머무는 공간이 자연스레 그들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을 터. 집은 예술가들에겐 삶의 터전이자 영감을 주는 뮤즈인 만큼 그들을 이해하는 데 예술가의 집은 흥미로운 주제다.
이 책은 17명의 시각예술가와 그들이 살았던 공간을 담은 예술 에세이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두 저자는 전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예술가들의 집을 직접 방문하고 그들의 공간에 관한 감상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했다. 감성적인 문체와 다채로운 그림에 끌려 책을 열었다.
먼저 이들은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의 저택으로 찾아간다. 프랑스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집은 색으로 가득하다. 노란색, 청록색, 빨간색…. 모네는 삶의 활기를 얻는 공간으로서 지베르니의 저택을 사랑했다. 모네는 밝고 활기찬 집에서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며 치열한 작품 활동을 계속할 힘을 얻었다.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어떨까. 고흐의 프랑스 아를 집은 ‘옐로 하우스’라 불린다. “신선한 버터 색깔”이라는 고흐의 묘사처럼 이 집의 외벽은 온통 노랗다. 아를로 거처를 옮긴 뒤 고흐의 작품에 색채가 가득한 것도 집의 외관과 관련 있다. 어둠 속에서 삶을 버티던 고흐의 작품에 따뜻함이 깃든 것도 그가 머물던 공간이 주는 안정감 덕이다.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의 속살을 엿보고 싶다면 그가 1930년대 후반에 머물던 멕시코의 집 ‘카시아술’로 가보자. 이 집엔 멕시코의 전통 공예품과 토착 미술품으로 가득하다. 멕시코 전통 속에 고독과 고통을 녹여내 기존의 미술 범주에도 들지 않는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낸 칼로의 취향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칼로의 집은 뚜렷한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느껴진다”는 평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예술가가 세상을 떠난 이후 전혀 다르게 바뀐 공간도 있다. 미국 화가 장미셸 바스키아(1960∼1988)가 마지막 생애를 보냈던 미국 뉴욕 그레이트존스의 집이 대표적. 바스키아가 세상을 떠난 후 이 집은 일식 식당, 식료품 창고, 선물 가게로 바뀌었다. 바스키아를 기리는 그라피티(낙서 형태의 벽화)가 가득한 건물의 외벽만이 이곳이 바스키아의 집이었음을 알려줄 뿐이다. 현대 미술계에서 ‘검은 피카소’로 불리는 그의 위상을 고려하면 안타까운 현실이다.
특히 유색인, 여성 예술가의 집이 소실된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가난하고 힘없는 예술가들의 집이 사라져 그들의 사후에 깊이 연구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 흑인이건 백인이건, 남성이건 여성이건 예술가의 집을 지켜야 앞으로도 그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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