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에 고향 경북 군위를 떠나 대구와 경북 칠곡 등에서 생활했어요. 30대 초반에 결혼한 뒤 30대 중반부터 고향으로 돌아와 정착했습니다. 2009년 청천벽력 같은 일이 당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잃은 것입니다. 처음엔 술로 달랬지만 사춘기 아이들을 보면서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 때 저를 지켜준 게 바로 보디빌딩입니다.”
지난해 12월 18일 경기도 수원메쎄에서 열린 2021 미스터&미즈코리아 마스터스 남자 60세 이상부에서 정상에 오른 신일동 경북 군위군보디빌딩협회 회장(61)은 근육을 키우며 아내 잃은 슬픔을 극복했다.
평소 다양한 운동을 좋아했던 신 회장은 20대 후반부터 보디빌딩을 시작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몸을 만들어 보디빌딩 대회에도 출전했었다. 하지만 객지를 떠돌면서는 사는 데 바빠 체계적이기 보다는 건강 유지 정도로만 운동했다. 아내를 보낸 뒤엔 웨이트트레이닝을 운동이라기보다는 몸을 학대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술도 많이 마셨지만 가학적으로 운동해 몸이 피곤해야 그나마 잊을 수 있었다”고 했다.
방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1남 2녀 아이들을 위해 아빠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고 당시 첫째 딸이 고등학교 2학년. 막내가 초등학교 6학년으로 민감한 시기였다. 그래서 운동을 체계적으로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2012년 군위군보디빌딩협회 회장을 맡으면서 또 다른 변화의 기회를 맞았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트레이너들에게 대회 출전 경험을 주려고 하는데 협회가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해서 만들었다. 보디빌딩 관계자들이 당시 운동을 열심히 했던 내게 회장을 제안해 하게 됐다”고 했다. 선수들 뒷바라지 하면서 대회에 따라 다니다보니 젊었을 때 대회에 출전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다시 대회에 출전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2013년 6월 미스터&미즈코리아 경북선발대회에 출전해 중년부에서 3위를 했습니다. 이게 첫 대회였습니다. 목표를 설정하고 운동에 집중한 뒤 대회에 출전하는 과정을 반복하다보니 과거 아픔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하루 2~3시간 씩 훈련했다. 큰 대회는 아직 엄두를 못내 각종 생활체육 보디빌딩 대회 60세 이하부에 출전했다. 꾸준히 성적을 냈다. 2015~2016년 준우승만 4번을 했다. 2017년 8월 문화체육관광부 전국 생활체육보디빌딩대회 60세 이하부에서 처음 정상에 올랐다. 한 달 뒤 대한체육회장배 전국 생활체육보디빌딩대회 60세 이하부에서도 우승했다.
“대회에 출전하니 아이들이 좋아했습니다. 특히 큰 딸과 막내딸은 대회 때마다 경기장을 찾아 ‘프로탄(피부색 바꿔주는 물질)’을 발라주며 응원했죠. 경북 지역에서는 저보다 우리 딸들이 더 유명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나도 덩달아 즐거웠죠. 각종 대회 우승으로 아빠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보디빌딩은 신 회장 삶도 크게 바꿨다. 평소 막걸리 마시는 것을 좋아했는데 근육을 키우려면 술을 줄여야 했다. 자연스럽게 절주가 됐다. 단백질 위주의 간편한 식단은 주로 혼자 살아가는 그에게 여러 가지 챙겨 먹어야하는 수고를 덜어줬다.
2020년부터 목표를 상향 조정했다. 국내 메이저대회인 YMCA와 미스터코리아 대회에서 우승하겠다는 각오로 훈련에 임했다. 하루 2회로 나눠 5~6시간 씩 훈련했다. 2020년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이 터졌지만 훈련을 멈추진 않았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군위문화체육센터가 코로나19 정부지침에 따라 몇 개월씩 문을 닫았지만 대구와 칠곡 등 문을 연 헬스클럽을 찾아다니며 ‘원정 훈련’을 했다. 그리고 2020년 10월 2020년 미스터&미즈코리아 마스터스 남자 60세 이상부에서 3위를 했고, 한 달 뒤 열린 YMCA 대회에선 정상에 올랐다. 지난해 12월 5일 열린 YMCA 대회에서 60세 이상부 2연패를 달성했고 미스터&미즈코리아에서 대회 첫 정상에 오른 것이다.
“뿌듯했습니다. 특히 지난해 12월 12일 결혼한 큰 딸이 너무 좋아했습니다. 메이저 두 대회에 참가하느라 17kg이나 뺀 몰골로 혼주석에 앉아 미안했는데…. 엄마를 일찍 보내면서 가정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어느 정도 털어낼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은 성적을 낼 땐 성취감도 느낍니다. 그런 나를 아이들이 자랑스러워합니다.”
신 회장은 보디빌딩에서 운동도 중요하지만 음식조절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18일 대회를 마친 뒤 10여일 가량 일반식을 먹은 그의 체중은 10kg이나 증가했다.
“대회 때 65kg이었는데 지금은 75kg입니다. 대회를 준비하지 않는 비 시즌 때 최대 82kg 나가니 체중 변화가 얼마니 심한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왜 이런 모습을 보여주느냐면 식단조절이 체중조절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고 싶어서입니다.”
신 회장은 “운동도 중요하지만 몸에 미치는 영향은 운동이 20~30%, 식단 조절이 70~80%”라고 강조했다. 아직까지 신 회장은 대회를 준비하며 언제든 몸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균형잡힌 몸매를 유지하려면 먹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것입니다. 단백질 위주의 식단이라면 단백질을 하루 체중 1kg당 2g을 먹어야 합니다. 제 지금 체중으로 계산하면 150g이상을 먹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단백질은 소고기나 닭 가슴살 150g이 아니라 순수 단백질 150g입니다. 일반적으로 닭고기나 소고기 150g으로 생각하니 보디빌딩 식단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절대 어렵지 않습니다.”
소고기의 경우 우둔살은 100g당 순수 단백질이 21g 들어있다. 체중 60kg인 사람은 하루 120g의 단백질이 필요하니 하루에 우둔살 600g 이상을 먹어야 한다. 여기에 탄수화물과 야채나 과일까지 먹어야 하니 하루 기준으로 따지면 적은 양이 아니다. 닭 가슴살은 100g당 28g의 순수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다. 신 회장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순수 단백질이 아닌 고기 자체의 무게로 계산을 하다보니 보디빌딩은 식단 때문에 어렵다고 생각한다. 절대 아니다”고 말했다.
“과거엔 탄수화물을 전혀 먹지 않는 무탄 다이어트를 했습니다. 요즘은 그게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는 연구결과가 나와서 무탄이 아니라 고탄, 저탄 조절하면서 식단을 만들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엔 평상시엔 일반식을 하다 대회를 앞두고는 단백질 위주로 바꾸면서 고구마를 하루에 6번 나눠서 먹는 식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야채와 과일도 많이 먹는 식단입니다. 이렇게 해도 근육을 키우고 선명도를 높이는데 큰 문제없습니다.”
근육을 키우면서 건강은 자연스럽게 유지되고 있다. 그는 “내 또래 중 내가 가장 젊어 보이고 건강하다. 어떤 옷을 입어도 속칭 자세가 나온다. 모두 웨이트트레이닝 덕분이다”고 말했다.
“솔직히 매일 근육운동을 하는 게 쉽지는 않아요. 다소 고통이 따르기는 합니다. 하지만 땀을 흘리는 자체가 어느 순간 즐겁습니다. 그리고 몸의 각이 잡히는 것이 보이면 희열을 느낍니다. 몸은 운동하면 할수록 아름답게 바뀝니다.”
신 회장은 지금은 직장을 다니며 개인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어 아직 다른 사람들을 지도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조만간 지도자 자격증을 획득해 100세 시대를 맞는 어르신들에게 도움을 줄 계획이다.
“과거엔 메이저 보디빌딩 대회에서 우승하면 지도자 자격증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젠 자격증 시험을 봐야 합니다. 은퇴를 앞두고 있으니 지도자 자격증을 따 건강하게 살고 싶은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신 회장은 또 다른 목표도 세웠다. 올 10월 국내에서 열릴 예정인 세계 보디빌딩&보디피트니스 대회 마스터스 부문에서 우승하는 것이다. 신 회장에게 이제 보디빌딩은 삶의 유일한 낙이자 희망이다. 그는 “아이들도 건강하게 보디빌딩에 집중하고 있는 아빠를 응원하며 걱정을 덜고 있다. 죽을 때까지 운동을 멈출 수 없는 이유”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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